‘싱클레어 루이스(Sinclair Lewis)’의 ‘있을 수 없는 일이야(It Can’t Happen Here)’는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모두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독재가 사실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표지

이 책은 탄생부터가 재미있다. 1930년 당시 파시즘은 유럽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면서 미국인들에게도 자국 내에 파시즘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 논란이 일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라며 가능성을 부정했는데, 미국의 문화와 정치 역사가 유럽의 것과는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책은 거기에 반대하며 ‘이렇게 있을 수 있다’고 내놓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펼치면서 과연 어떻게 사람들이 독재자가 될 사람에게 빠져들고, 그를 투표를 통해 선출하며, 또 그가 정권을 잡은 후 어떤 과정을 거쳐 독재를 이룩하는지 보고 싶었다.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에서는 그 과정을 그렇게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물론, 선거 과정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마음을 주는 이유나 운동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군사 독재 정권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간략하게 이야기하긴 하지만 중간을 들어낸 듯 급박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그게 갑자기 이렇게 될 거였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한편으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는데,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번의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그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난 바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책에서 사람들을 혹하게 했던 공약은 근래 한국과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먹힌바 있는 것이었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더니, 1935년에 나온 이 책이 예언서와 같아 보일 줄 누가 알았겠나. 작가의 선견지명이 새삼 놀랍다.

책에서 더 중점을 둔 것은 독재자 탄생보다는 독재 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는 것인데, 이는 애초에 미국에서 일었던 논란이 ‘파시즘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지’였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이 부분은 꽤 잘 묘사한 편이다. 나는 이걸 보면서 여러 번 히틀러를 떠올렸는데, 이 책이 히틀러가 집권한 1934년 다음 해에 나왔다는 걸 생각하면 좀 오싹하다.

나라가 어떻게 바뀌는지도 잘 묘사했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나라에 ‘익숙’해져 가는지도 잘 다뤘다. 이미 일제 강점기를 통해 어느 정도 배운 바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사람들의 변화와 변질이 무섭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어나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만, 그 끝이 과연 밝고 희망찰지는 알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작가가 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다.

여러 번 놀라고 감탄하면서 본 책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대했던 부분이 다소 소홀한 것도 있고, 단순한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내용도 있으며, 일부 이야기는 허술하게 얼버무리듯 넘어가기도 한다. 번역도 썩 좋지 않은데, 문장이 한국어 같지 않은 게 많아서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미국의 정치와 역사, 인물이 긴밀하게 엮여있어서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하지만, 책이 말하는 가르침 만큼은 꽤 선명하다. 이런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그건 바로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국민들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특히 많은 정치적 실패를 경험한 한국에 이 가르침은 뼈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