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해도 괜찮아’는 산을 잊지 못해 히말라야로 떠났다가 좌절을 겼었지만, 그러고 나서도 포기 않고 끝내 에베레스트까지 오른 한 월급쟁이의 등정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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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서 말하는 ‘딴짓’은 ‘꿈’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저자는 굳이 ‘딴짓’이라고 깎아내려 얘기했는데, 그것은 이 ‘꿈’이 한 가정의 가장이자 사회인으로서 져야 하는 ‘의무’도 내팽개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좇으려면 직장 일도 팽개쳐야 하고, 그동안 가족들을 돌보지 못하게 됨은 물론이요, 어쩌면 가족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저자가 좇는 꿈인 ‘등정’은 그런 꿈이다.1

그러지 고민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다 보니 꿈이라고 하지 못하고 ‘딴짓’이라고 하게 된 거다.

그래도 잊지 못하는, 언제든 마음속에 불씨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기에 그것이 꿈일 것이다. 그래서 이미 한번 실패하고, 그 실패를 통해 다시 등산하지 말라는 의사의 진단까지 있었음에도 떨치지 못하고 결국 등정길에 오른다.

그게 가능했던 건 포기하지 않고 ‘전례가 없다’며 꺼리는 직장과 조율하고, 등정이 가능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무엇보다 가족의 이해와 그에게 함께해준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등정은 사실상 그의 주변 사람들이 이루어준 셈이다. 그래서 그의 산에서의 깨달음이 더 값진 것 같기도 하다.

흔히 꿈을 좇는다는 건 현실을 버린다는 것, 삶을 버린다는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만큼 많은 것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꿈을 좇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쩌면 그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한다. 꿈을 좇아도 죽지 않는다고. 나는 그의 깨달음과 주절거림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나는 아직 그처럼 꿈을 좇아보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알 것 같다.

나도, 이미 잊어버린 내 꿈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1. 참고로, 등산(登山)은 ‘산을 오르는 것’, 등반(登攀)은 ‘손을 사용할 정도로 험하고 어려운 곳을 오르는 것’, 마지막으로 등정(登頂)은 ‘정상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등정을 목표로 등산했지만 끝내 오르지 못하면 ‘등반’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히말라야에 등반했고, 에베레스트에 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