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히데키(遠藤 秀紀)’의 ‘인체, 진화의 실패작(人体 失敗の進化史)’은 미생물에서 인체에 이르는 진화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표지

진화는 현대에선 상식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막연히 각자 다른 형질을 가진 여러 개체 중 보다 환경에 적합한 형질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아 그 형질을 후대에 남겼다는 것 정도로만 알지, 각각의 부위와 구조가 어떤 식으로 변화된 것인지 까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일반이 관심을 갖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또 전문적이라서다. 그것을 이 책은 ‘설계 변경’이라는 관점에서 풀어서 설명했다.

그걸 위해 저자는 불쑥 시체를 들이민다. 각 기관의 차이를 살펴보고, 그것의 구조 등을 살펴보는데 시체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때론 해부한 시체를 통해, 때론 화석이나 뼈 모형등을 보며 각자의 상동 기관이 서로 어떻게 다르고 그것은 어떻게 변화되어왔는지를 얘기한다.

예를 들어, 뼈는 애초에 지방처럼 영양분을 저장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다는 마치 무중력과 같으므로 태고의 바다에 살던 생물에게 뼈는 딱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영양분이 풍부하지 않으므로 칼슐과 인산같은 미네랄을 보존했다가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만든것이 인산칼슘 덩어리고, 뼈의 전신이다. 처음엔 단순한 저장고의 역할이었던 이 덩어리는 막상 만들고보니 단단해서 몸체를 보호할 수도 있고, 근육으로 덮어 운동성을 높이는데 쓸 수도 있었다. 그래서 몸의 틀을 이루는 뼈로 활용하게 되었다는 거다.

그밖에 귀를 만들기 위해 턱을 갖다 쓴다던가, 그랬더니 턱 관절이 필요해서 아래턱뼈를 변형한다던가, 이 턱뼈는 아가미를 바꾸어 만들어진 것일 가능성이 있다던가 하는 식의 이야기를 저자는 꽤 흥미롭게 풀어냈다.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바뀌는 진화의 과정을 ‘설계 변경’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결국 인간은 수많은 우연과 설계 변경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에는 직립보행이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손, 거대한 뇌 처럼 감탄할만 것도 있으나 설계 변경에 따른 실패도 그에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직립보행을 위한 설계 변경은 추간판 헤르니아, 탈장, 어깨결림 같은 다양한 문제들을 나았고, 자유로운 손과 지나치게 우수한 대뇌는 그걸 더욱 부추긴다. 이것들이 있기에 의자나 사무직, 공장 같은 것들이 생겼고, 결국 자연파괴와 핵무기 같은것 까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은 어쩌면 여러 설계 변경의 결과로 만들어진 실패작일지도 모른다.

설계 변경의 관점에서 본 인간은 오랫동안 유지보수해온 소프트웨어와 같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군더더기 없고 아름다웠지만, 모습을 바꾸고 기능을 더하기 위해 기존 설계를 계속해서 바꾸면서 이른바 ‘스파게티 코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당장은 어떻게든 굴러가긴 하나 어떤 문제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고 문제를 발견해도 해결하기 어렵다. 기껏 문제를 해결해도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프로그래밍에서는 이럴땐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모두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만들자고 한다.

진화의 과정을 얘기하다보면, 인간을 그 최종 결과물처럼 얘기하기도 한다.1 이건 다르게 보면 더 이상의 설계 변경이 불가능한 진화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럼 이제 남은건 멸종이라는 슬픈 미래 뿐일까. 아니면 또 다른 진화 가능성과 그걸 이루기 위한 시간이 남아있을까.

  1. 엄밀히 말해서 틀린 말이다. 진화는 한 방향으로 이뤄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은 진화의 방향이 다를 뿐, 진화의 정도가 다른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