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키 - 두개의 꿈에 관하여’는 꿈과 현실이 뒤섞인 듯한 묘한 판타지 소설이다.

표지

무려 1056쪽, 200자 원고지로 3800.3매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 먼저 눈길을 끄는 이 소설은 제목처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작할 때부터 그러하다는 걸 내비치는데, 다만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본격적인 판타지일 줄은 몰랐다. 기본적으로는 현실에 뿌리를 내린 사람들이 꿈을 통해 일종의 일탈처럼 소소한 판타지를 겪는 것일 줄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확 바뀌는 느낌이라 조금 놀랐다.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묘하게 다른 작품을 연상키시키도 한다. 꿈과 현실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넘어서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내가 꿈을 꾸는 것인지 누군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지를 헷갈리게 하는 경계가 미묘한 이야기 등이 그렇다. 자꾸만 반복되서 나오는 성은 노래 ‘마법의 성’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동화같기도 하고 마법이나 환상의 세계같기도 한 꿈 속 세계도 매력적이었다.

두사람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둘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도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마치 떡밥처럼 보이는 얘기도 있어서 그런것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재미도 있었다. 분량이 분량이다보니 전개는 좀 느린 느낌도 있지만, 대신 그만큼 묘사에 있어서는 부족함이 없어서 마치 머릿속에 그리듯이 장면과 세계들을 그려볼 수 있어 좋았다.

몇몇 장면에서는 깜짝 놀라기도 했는데,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설정이나 표현, 행위 등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게 의미가 있나 싶어서 더 그랬다. 나름 흥미롭기도 하고, 있음직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꼭 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단 얘기다. 주요 이야기 전개에서도 조금 급작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아무래도 조금 의아함이나 마뜩잖음을 남기기도 했다.

책 구성 면에서는 마치 연재분을 그대로 실은 듯한 편집이 눈에 뗬다. 그렇다보니 딱히 장면 전환 등이 없어도 다른 회로 나눈 부분도 있었는데,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 안에서 특정 단어를 묘하게 콕 집어 언급하는 것도 독특했다. 특정 상표를 지속해서 언급하는 게 그 하나다. 작가는 마치 그게 게임에서의 유니크 아이템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용하곤 하는데, 그래서 더 묘하게 눈에 띄고 입안에 씹히기도 했다. 그 외에도 마치 우리에게 익숙했던 단어들에 전혀 다른 역할이나 뜻, 힘이 담긴것처럼 사용하는 것도 조금 신선했다. 그러나 그만큼 선뜻 와닿지 않는 측면도 있었다.

책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분량에 압도되었던 것과는 달리 소설은 의외로 가볍고, 생각과는 좀 달랐으나 하나의 꿈 같기도 해서 꽤 재미도 있었다.

보통의 책 2~3권에 달하는 분량을 이용해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다만 풀어놓았던 이야기를 그러모아 마무리 하는 것에는 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긴 분량인데도 불구하고 다 보고 나서는 ‘끝난건가?’ 싶어 다시금 뒤적거려보게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