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오 마이코(瀨尾 まいこ)’의 ‘불량소년 육아일기(君が夏を走らせる)’는 지인의 부탁으로 갑자기 2살배기 아이의 육아를 맡게 되면서 변화해가는 것들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아이란 참 까탈스런 존재다. 안그래도 될 것 같은데도 그러고, 사소한 것에도 집착하며 자기 안에서 크게 부풀리고, 그 감정에 취하면 심할 경우 몇시간이고 거기에 절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때도 많다.

그런가하면 반대로 꾸밈이란 없는, 솔직하고 거짓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속으로 딴 마음을 품지도 않으며,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히 반응한다. 심지어 다른 감정에 빠져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상 떠나갈 듯 서럽게 울다가도,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보면 갑자기 뚝 그치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게 웃기도 한다.

작은 것에도 까탈스럽게 굴지만, 그보다 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함빡 웃음을 짓는 존재. 18세 날라리 오타(大田)가 맡은 2살배기 아이 스즈카(鈴香)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엔 도저히 무리 아니냐 싶을만큼 힘들어하지만, 점차 그런 아이만의 매력에 듬뿍 빠져들게 된다.

소설은 그걸 굉장히 잘 묘사했다. 그래서 금세 전에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미소짓게 만든다. 아이의 행동이나 말 같은것도 사실감이 있어서, 자연스레 ‘맞아! 맞아!’ 하게 된다. 소설에서 아이와의 일들은 그저 그러한 일상적인 면들을 나열한 것 뿐이기는 하지만, 그게 생각보다 읽는 것 만으로 가슴이 따뜻해지고 미소짓게 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통해 전에는 미처 겪지 못했던 일들도 겪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오타는 무기력하게 이도 저도 아닌 삶에서 벗어나 자기가 뛸 수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이야기적으로만 따지자면 사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주요하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갑작스레 찾아온 잠깐 동안의 육아를 중심으로 흘러가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받았던 인상과 볼 때, 그리고 보고난 후의 느낌이 꽤 달랐다. 첫 인상은 불량과 까탈을 대변하는 두 아이의 만남이 일으키는 일종의 코미디 같은게 아닐까 했다. 한국어판의 제목이나 표지도 좀 그래 보였고.1 그러나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잔잔한 내용이었고, 게다가 꽤 현실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냉혹한 현실 그대로 담은 건 아니고, 내내 따뜻한 시선을 유지한다. 현실의 어긋남과 가혹함을 생각하면 몇몇에선 ‘안돼! 그러지 마!!’라고 외칠법한 장면도 있긴 했는데, 작가는 그런것들 마저도 그저 희망적인 것으로 남겨둔채 마무리를 짓는다.

그래서 조금은 너무 동화같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은 그 후가 더 문제인데 그걸 애써 감추며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고 끝내버리는 것을 떠올리게 해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덧붙였다면, 주제와도 어긋나고 불피요한 첨부가 됐을 것 같기도 하다.

번역은 좀 아쉬웠다. 스즈카의 대사가 그 하나다. ‘이 발음은 되는데, 저건 안된다고?’, ‘이걸 말할때는 그게 되는데, 저걸 말할때는 그게 안된다고?’ 같은 의문을 남기기 떄문이다. 일본어와 한국어의 차이 때문에 원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의역을 하더라도 좀 더 자연스럽게 바꾸는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미 그렇게 한거였다면, 미안하다만;)

사소하지만 오역도 있었다. 예를 들면, ‘레아’가 그렇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앞뒤 상황을 보면 ‘레어(Rare)’를 말하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고 그냥 독음을 해논건가 싶어 좀 황당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무난하고, 아이의 사랑스러움도 나름 잘 담아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진로’처럼 ‘앞으로’에 대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아니면, 그런 것과 전혀 상관 없더라도, 그저 이 나이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좋을 듯하다.

  1. 한국어판 표지는 원서 표지와 전혀 다르다. 그림 자체도 그렇지만, 분위기는 더 그렇다. 둘 다 본문의 일부를 잘 담고 있기는 하지만, 책을 다 보고 나서 살펴보면,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라는 것도 있고 해서, 역시 원서 쪽이 더 작품의 느낌을 잘 살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