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의 타자기’는 구렁텅이속에 있는 소녀와 엄마의 성장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첫인상과는 꽤 딴판인 소설이다. 표지도 그렇고, 장르도 그러해서 어느정도 무거운 주제를 담고있더라도 나름 가볍게 즐길 수도 있는 소설이 아닐까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는 커녕 가정폭력과 페미니즘을 거의 대놓고 쓰다시피 했다. 소설의 시작부터가 그렇다. 마치 노예처럼 부려지며 감금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엄마 서영과 골칫거리로만 여겨지는 딸 지하의 이야기는 떨쳐내려 해도 찐득하게 들러붙는 어둠처럼 기분나쁨을 안긴다.

그렇다고 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마냥 허황된 설정처럼 보이지만은 않는다. 소설 속 내용들이, 비록 부분부분들이 뒤섞어놓은 것 같긴 하나, 뉴스 등으로 접했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는 말이다.

억압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자연히 소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로 흘러가게 되는데, 저자는 이 부분을 조금 재미있게 구성했다.

‘순간이동자’와 ‘조용한 세상’이라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소설이라는 매개로 긴밀하게 엮여있는 두 이야기를 이용해 예상외의 미스터리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두 이야기를 적당히 끊으며 오가는 것도 나름 잘해서 어떻게 이어질지 흥미를 일으키며, ‘순간이동자’가 상상에서나 가능할법한 판타지라는 것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조금은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돌아보면 이를 통해 전해주는 트릭같은 느낌이 이 책을 꽤 괜찮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개별적인 내용이나 이야기만 놓고 보면 썩 잘 만들어졌다고 하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정폭력, 페미니즘, 성장같은 주요 이슈들이 이야기에 녹아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게 크다. 개연성이 부족하달까. 너무 쉽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휙 넘어가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단지 순수하게 언급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꺼내든 이슈같다는 느낌도 들고, 주인공들의 성장이 확 와닿지도 않는다.

이건 희망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 나름 그럴듯 한 것도 사실이나, 그런데도 왠지 현실성 없이 공허한 자기계발서처럼 먼 곳에서 울리는 느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야기도 나름대로 볼만은 했고, 주제도 나쁘지 않았으며, 하려는 이야기도 잘 알겠는데… 막상 공감은 그렇게 막 못하겠달까.

그게 이 책을 결국 뭔가 좀 아쉬운 소설로 남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