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로 야리투(Álvaro Yarritu)’의 ‘남극의 아이 13호(La paz de las máquinas)’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인간과 인공지능의 다툼과 공존을 그린 SF 소설이다.

표지

익숙한 소재로 많이 다뤄졌던 주제를 이야기로 써내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패러디나 오마쥬를 넘어 표절이 되기 쉽고, 그런 것들은 여지없이 쓰레기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도 꽤나 위험한 위치에 있다.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전형적으로 낡은(오래된) 클리셰들을 잔뜩 사용했으며, 그걸 통해 보여주는 주제들도 모두 어디서 본듯한(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흥미롭고 나름 감탄을 하면서 볼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완성도가 꽤 좋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것들을 잘 이해하고 소설 속에 녹여냈다는 말이다. 덕분에 이야기가 식상하기보다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전개나 감성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면을 띈다.

빠른 이야기 전개 역시 좋다. 배경이 배경인만큼 처음엔 일부 단순 나열된 설명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나름 최소화했고, 남극으로의 이사부터, 새로운 학교, 새로운 만남, 그 와중에 겪게되는 사건들까지 계속해서 일이 생기기 때문에 딱히 지루할만한 지점도 거의 없다.

갈등을 부추긴 후 마무리하는 것도 잘 했다. 그게 이야기를 적절한 결말로 이끌며 작은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아쉬운 것은 연출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거다. 다르게말하면 문장력이 좀 떨어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똑같은 이야기, 장면이라도 어떻게 조금만 더 신경써서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싶은게 많았다.

이야기 전개에서도 몇몇을 너무 과감하게 생략해린 것도 아쉬웠다. 그래서 몇몇은 설명이 부족해 보기기도 한다. 물론 이는 그보다 더 중요한게 있어서 그런거기도 하겠다만, 이런 효율적인 구성은 주인공들을 덜 인간적으로 보이게도 만들었다.

반면에, 일부러 기계적으로 묘사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들은 극적일만큼 놀랍도록 인간적으로 그렸으니 생각해보면 좀 아이러니하다.

이런 상반된 모습은 소설 속 인간과 인공지능들의 이야기를 부각해주기도 했으며, 인공지능들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만들었기에 한편으론 또한 긍정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