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지의 ‘선’은 흰 도화지에 연필로 그려나간 글자 없는 그림책이다.

표지

책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마치 눈처럼 하얀 배경에 연필로 선과 아이를 그리고 일부만 채색한 그림들로 채워진 이 책은 마치 피겨 스케이팅을 그린 것 같다.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는 얼음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회전을 하거나 점프하고 논다.

그러다가 착지에 실패해서 결국 넘어지고, 자기가 미끌어져온 곳을 바라보며 낙심해 있는다. 그 때 다른 아이가 미끄러지며 노는것을 보고 아이는 다시 기운을 차리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자기 주위의 많은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즐겁게 논다.

8~9

얼핏보면 겨울 놀이를 그린것 같은 이 그림책은, 사실은 ‘그림 그리기’를 표현한 것이다. 첫장의 흰 도화지와 마지막장의 완성된 그림, 그리고 중간에 재시도를 하는것이 그것을 잘 나타낸다. 그러니까 하얀 얼음판은 도화지이며, 스케이트 탄 작은 아이는 연필과 지우개인 셈이다. 연필과 지우개가 도화지 위에서 돌아다니며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을 스케이트 타는 모습으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스케이트를 타는 소년은 어린 화가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처음엔 단순한 선으로 시작했다가 다양한 곡선도 사용하면서 재미도 느끼고, 선을 더해가면서 점점 더 복잡한 그림을 그려가는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다가 실수로 그림을 망쳐서 낙담도 하고, 하지만 다시 그리고 또 즐거워 하고, 그렇게 어느새 멋진 그림을 완성한다.

그림 그리기를 스케이팅으로 비유한 것이 독특한데, 둘 다 ‘선’을 남긴다는걸 생각하면 꽤 의미있다. 각 그림에서 연필과 지우개, 선을 어떻게 비유해서 표현했는가 살펴보는것도 재미있다.

그림 그리기를 정말 멋지게 표현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