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사토 호토리(黒郷 ほとり)’의 ‘리사의 먹을 수 없는 식사(リサの食べられない食卓)’는 여러가지 요소가 잘 섞여있는 힐링 드라마다.

표지

이 만화는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당장 주인공인 리사부터가 소위 ‘뱀파이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대중 문화 속에서 보아왔던 뱀파이어의 모습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나사가 한두개 정도 빠진 듯한 허술한 뱀파이어다.

그런 그녀가 요리에 손을 대면서 여러가지 실패를 하기도 하고, 그것에 보통 사람들이 휘발려서는 약속된 리액션을 하고, 그런 것으로 이야기를 가볍게 시작한다.

p7

p12

애초에 요리에 손을 댄 이유부터가 ‘먹이의 질이 더 좋은 피 맛으로 이어진다’는 꽤나 유사과학적인 것에 기댄 것이라는 점도 그녀의 허당끼가 얼마나 근본적인 것인지를 알게 한다. 그 덕에 이 만화는 무려 뱀파이어를 등장시킨 이야기 치고는 굉장히 가볍고 편하게 볼 수 있는 편이다.

그러는 한편 이 만화는 꽤나 진지한 SF에도 발을 담그고 있다. 그를 통해 인류사에 뭔가 큰 격변이 있었고 그래서 한번 뒤집어 엎어진 후라는 것을 은근히 내비치는데, 이게 (애초에 그닥 하드한 장르물이 아니라서 대충 넘어가게 되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일반적인 현대 문명의 연장인 것 같으면서도 또한 중세적인 양식과 분위기가 좋을대로 섞여있는 것을 은근히 잘 뭉개준다.

p77

1권에서는 살짝 맛만 보여주는 정도라 좀 사족처럼 보이기도 하고, 이후로도 과연 어디까지 진지하게 배경 설정으로서 내밀려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은 한편으로는 이후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냥 없어도 상관없는 부가적인 배경 설정으로 놔둔채 일상물로 이어가도 좋고, 반대로 이를 발전시켜 명확한 세계관을 그려내는 것도 나름 볼만할 것 같다.

p152

생각보다 비중이 낮긴 하지만, 먹방 요소도 꽤나 잘 담겨있다. 만화적 표현을 위해 단순해 해서 그리는 캐릭터들과 달리 일종의 정물화처럼 세밀하게 그려낸 음식들은 작가의 뛰어난 작화력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것을 먹고 즐기는 인물들의 모습 역시 정감있게 그려냈다.

확고한 캐릭터 메이킹을 위해서는 주인공을 끝까지 석탄밖에 못만드는 요리꽝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무리한 설정을 붙이기보다는 점차 발전하는 캐릭터로 만든 게 훨씬 자연스럽고 적절하다.

p160

일종의 요리만화이면서도 요리의 비중은 생각보다 낫다고 했는데, 요리 자체보다는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명확한 개성이 드러나도록 설정되었다. 성인(으로 보이는) 여자, 성인 남자, 할머니, 그리고 어린 아이라는 조합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일종의 가족으로 보게한다. 개인적인 상처나 결핍 같은 것을 안고있는 이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것들을 서로 보완해주는 모습을 보이기에 이 만화는 일종의 힐링물로도 읽힌다.

판타지에 SF, 먹방, 가족, 힐링, 코미디까지 상당히 여러가지를 섞어놨는데 그 중 어느 하나도 툭 튀어나오지 않게 그린 것이 훌륭하다. 전혀 자극적이거나 화끈한 맛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이야기에 걸맞아 좋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