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의 미녀’는 동명의 미라를 소재로 한 독특한 역사 소설이다.

표지

소재인 ‘누란의 미녀’는 1980년 사막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로, 마치 웃는 것 같은 표정 때문에 ‘죽음의 모나리자’ 등으로도 불린다. 이 미라에는 단지 잘 보존된 고대의 미라라 당시 사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몇가지의 의미가 더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시 국가의 정세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이란 기치 아래 소수민족들을 끌어안으며 때론 억압하거나 나아가 탄압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오래 전부터 모든 지역들이 중국에 속한 곳이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 다시 하나가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가 되는 게 마땅하다고까지 얘기할 수 있는 거다. 위그르족이 살고있는 서역, 신장 지역도 마찬가지다.

누란의 미녀는 그것에서 어긋난다. 붉은 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는 한족으로 대표되는 중국인과는 크게 다른데, 그건 위구르족과 그곳이 오래 전부터 중국과는 별개의 독립구역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그 지역의 사람들이 모두 그녀와 같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으며, 위구르족이 그녀와 같은 종족의 후예인지도 확실치 않다. 즉, 그녀만이 타지역에서 와 정착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유골을 토대로 복원한 모습은 한족이나 현재의 위그르족과 완전히 다른 서양인에 가까운 모습이었고. 그러므로 이 미라 하나만으로는 섣불리 무엇이 맞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저자도 그러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가능성을 그녀를 꼭 닮은 위그르족 여인의 등장으로 제시하고, 그걸 통해 위구르의 독립에 정당성을 좀 더 있어보이게 만들며, 그 연장선상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어느 정도는 위구르족이 중국인들에 맞서 힘겹게 독립운동을 해 나가는 민족소설의 모습을 띈다. 그렇다고 욕심을 내서 그런 위구르족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깊게 파해치거나 하지는 않고, 대신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러 이슈들을 온몸에 걸치고 있는 한국인들을 등장시켜 한국인과 지금의 위구르족들이 처한 상황을 대비시키며 함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게 생각보다 좋은 선택이었던 게, 많은 사람들이 위구르에 대해 사실 별로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뜸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선뜻 상황이나 감정에 공감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대신 그걸 한국인의 시선으로 조금씩 풀어내고 우리네 역사와 대비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좀 더 그들의 상황을 쉽게 이해하고 더 공감할 수도 있었지 않않나 싶다.

마치 한국의 과거를 보는 것 같은 신장에서의 일들은 때때로 소설의 배경이 언제인지 의심케 하기도 한다. 꼭 한참 한국이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하던 바로 그 때를 진하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인데도 마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은 또한 전형적인 원주민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조진표’가 위구르족과 만나 그들과 함께 하는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어떠면 단지 호기심이나 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으나 조금씩 그들을 도우며 그들에게 동화되어가는 이야기가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전형적인 클리셰를 느끼게도 한다. 그래도 흐름이나 이야기가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아서 딱히 단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