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노 료(西乃 リョウ)’가 쓰고 ‘후지 초코(藤 ちょこ)’가 그린 ‘마인 소녀를 구하는 자(魔人の少女を救うもの) Goodbye to Fate’는 영웅 판타지를 살찍 비틀어 그린 라이트노벨이다.

표지

영웅기는 판타지의 정석과도 같은 포맷이다. 좀 과장한다면 판타지는 곧 영웅기고, 영웅기는 곧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다. 오랜세월에 걸쳐 꾸준히 사랑받는 영웅기는 일정 수준이상의 재미를 보장하기 쉬운 반면 그만큼 식상해 보이기 쉽기도 하다. 그래서 큰 얼개는 유지하되 세부적인 설정이나 이야기는 전형적인 것에서 좀 비틀어 새로움을 더하기도 한다. 이 소설도 그렇게 살짝 비틀린 영웅기의 하나다.

주인공도 영웅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었던 보잘것 없을 정도로 약한 인물이고, 그런만큼 그의 행보 역시 영웅의 것과는 꽤나 거리가 있다. 영웅의 일행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한 소녀를 만나게 되면서 더욱 영웅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꽤 흥미롭게 잘 그렸다.

거기엔 은근히 꼬여있는 신과 데몬의 세계관이 한 몫한다. 겉으로는 선한 신이 악한 데몬에 맞서는 모양새지만, 은근히 마인과 관련해서 구린 뒷 이야기가 있음을 짐작케하는 내용이 꽤 있다. 비록 소설이 단권짜리라 그게 속시원하게 밝혀지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부분을 상상해 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다.

이런 존재의 모호함은 영웅과 주인공에게서도 나타난다. 이야기 내내 영웅은 막강하고 주인공은 보잘것 없게 그려지지만,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과연 누가 영웅인지 좀 헷갈리게 된다. 그만큼 주인공이 영웅 일행에게 큰 영향을 끼쳐서기도 하지만, 과연 무엇이 더 영웅으로서 어울리는 것인가를 생각하게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이후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주인공의 성격적인 면이나 소녀가 주인공에게 끌리는 이유 같은 것도 잘 담아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꽤 공감하면서 볼 수도 있다. 나름 완성도가 괜찮은 판타지 소설이다.

구성은 좀 아쉬운 점도 있는데, 특히 제목이 그렇다. 이게 중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어서 초중반 힘이 많이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목을 그렇게 해놓고 막상 본문에서는 은근히 드러내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니 솔직히 뭐하는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번역도 좀 아쉽다. 전체적으로 보면 무난하긴 하나, 이상한 문장이 있어서다. 개중에는 도통 무슨말인지 모르겠는 것도 있다. 그렇다고 오역은 아니고 단순한 오기가 아닐까 싶은데, 문제는 그게 꽤 많다는 거다. 좀 더 퇴고에 신경써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