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짓기’는 2개의 이야기가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 얽히고 설키며 하나의 이야기로 짜지어져 가는 맛을 보여주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표지

처음은 그렇게 특별할 것 없다. 이제는 단물이 빠져버린 소설가가 등장해 어떻게든 해보려고 사람들을 취재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다 기묘한 사회복지사와 만나게 되고, 그를 인터뷰하던 중 당한 폭행이 뼈에 사무쳐 그를 추적해 접근하고 비밀을 캐내려 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과거 60년대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이 이야기는 한 불행했던 소녀와 그녀의 삶을 담고 있다.

이 둘의 이야기는 처음엔 전혀 접점이 없는데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접점이 생기고 겹치는 것처럼 이어지면서, 큰 전체 안에 속한 하나의 이야기임을 은근히 계속 내비친다. 그래서 독자가 소설을 읽으며 자연스레 그사이를 상상하고 예상해보게 만든다.

이런 방식은 소설 내에서도 얘기하는 ‘거미집 짓기’와 닮았다. 직선인 방사실과 나선실이 서로 엮여 거미집이라는 형태를 만든다는 것과 거미집이란 실들의 집합뿐 아니라 그사이의 공간도 포함한 것이라는 것 말이다. 이 소설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나열하지만 각각은 서로 미묘하게 이어져 있어 ‘거미줄 짓기’라는 하나의 큰 소설을 이뤄 나간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그랬던 이야기가 뒤로 가면서 점점 흥미로워지고 끝에 가서는 욕하며 웃으며 내려놓게 한다.

타이틀

책 제목인 ‘거미집 짓기’가 단순한 비유나 소설 속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소설 자체를 그렇게 썼다는 것도 재밌다. 작가는 거미집 짓기라는 소설 작법에 관해 얘기하면서 또한 그 한 예로 이 소설을 보여주기도 하는 거다. 그런 구성도 맘에 든다.

물론, 걸리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 혹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군데군데 구멍 같은 게 보였다. 어디서 가져온 것 같은 대사와 장면은 데자뷔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소설 자체가 거미집 짓기의 한 예이기도 하다 보니 이런 것도 일부러 그런 걸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몇 가지 걸리는 점이나, 무려 486쪽으로 원고지 1700매 가까운 긴 분량이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초반 이후로는 계속 흥미를 끌어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끝까지 아껴뒀다 터트려 이제까지 담아뒀던 걸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전도 매력적이다. 끝나고서 보면 작은 이야기 조각들의 전개 순서나 서술법도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인간의 욕망 뒤에 숨은 서늘한 진실을 파헤친 수작’이라는 말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지만, 소설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나로서는 작품의 의의나 작가의 의도 같은 것이야 어찌 됐든 꽤나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표지는 꽤 익숙한데, 이미 자비네 티슬러(Sabine Thiesler)의 스릴러 소설 ‘그리고 바깥, 새 죽다(Und draußen stirbt ein Vogel)’와 알렉스 마우드(Alex Marwood)의 스릴러 소설 ‘사악한 소녀들(The Wicked Girls)’의 일본어판(邪悪な少女たち)에서 표지로 사용했던 이미지를 가져와 일부 변형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Und draußen stirbt ein Vogel 邪悪な少女たち

이 이미지를 쓴 소설 셋이 모두 스릴러 소설이라는 점이 재밌는데, 굳이 ‘거미집 짓기’와는 별로 안 어울리는 이 이미지를 표지에 가져다 쓴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