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녹여주오’는 냉동인간 실험으로 20년을 건너뛰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다.

표지

이들의 이야기는 야심찬 TV 기획에서 시작한다. 성공이 문턱까지 온 냉동수면 기술을 직접 체험해보겠다는 거다. 나름 과학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이 기획은 어디까지나 기술을 선보이는 의미에서 24시간만 냉동수면을 하기로 했으나, 실험을 총괄하던 황갑수 박사가 불연 실종되면서 무기한 연기되어 버린다. 그리고 20년의 시간이 흐른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과거를 배경으로 과거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라면, 이 이야기는 과거에서 건너온 사람이 현대에 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그린다. 그래서 지금은 당연한 스마트폰에 놀라기도 하고 그러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적응하기 때문에 이게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건 냉동수면이라는 설정도 그렇다. 애초에 이 소설은 냉동수면을 전혀 그럴듯하게 그리지 않는다. 냉동 수면에 들어가는 것이나,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한 방법, 그리고 어떻게하면 냉동했던 때에 가까운 상태로 깨어날 수 있는가 등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냉동수면에서 깨어난 사람이 왜 저체온 상태를 유지하는지나 그게 왜 이들에게 안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도 그렇다. 꼭 현실구현이 가능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럴듯하게는 묘사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못한다.

애초에 이 소설에서 SF적인 요소는 별로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냉동수면과 관련된 이야기는 대부분 SF보다는 판타지에 가까우며, 이야기에 갈등요소를 부여하는 장치 정도로만 쉽게쉽게 갖다 붙인 것이다. 어쨌든 중점은 ‘로맨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로맨스조차도 전혀 제대로된 면이 없다는 거다. 과거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급작스럽게 정리하지 않나, 새로운 여자를 만드는 것도 갑작스러워 도통 왜 호감을 갖게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그 뒤의 로맨스에 공감할 껀덕지가 있겠나.

사실 생각해보면 꽤 그럴듯한 이야기가 됐을만한 요소는 많이 있었다. 주인공들 입장에서보면 그저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모두 바뀌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여자친구가 훌쩍 나이를 먹었을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모두 바뀌었으니, 그들이 알던 것과 실제와의 간극차가 충분히 갈등을 가져올 만하다. 20년동안 살아오며 여자친구의 감정은 무뎌졌을 것임에 반해, 체감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여전히 열정적일 남자의 감정 차이가 미묘한 어긋남을 가져올 수도 있고, 그게 서로 다시 마주치면서 점차 역전되는 것을 그릴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같은 상황에 처해 자주보고 서로를 걱정해주는 두사람이 자연히 정들게 되는 것도 가능하고. 그러나, 이런 기껏 만들어진 상황을 전혀 이용하질 못한다.

소설의 완성도도 낫다. 당초 TV드라마였던 것을 소설로 옮기면서 소설로서 다시 쓴 것이 아니라, 그저 원작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데에만 급급한 것 같다. 소설엔 화면이 없다는 것도 생각하셔야지. 애초에 TV드라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소설이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나름 감초처럼 넣었을 막장 요소도 그야말로 TV드라마에서나 먹힐만한 것이라 소설에서는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오히려 좀 황당함을 느끼게도 한다.

소설이 되면서 나아진 점을 굳이 꼽자면, 발연기 문제가 없는 것 정도 뿐인 것 같다.

옮긴이도 이야기를 쓰는 사람인데, 기왕 원작이 썩 좋은평은 듣지 못한 거 차라리 리메이크라고 생각하고 새로 썼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