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수메르 신화’는 수메르 신화를 지문위주의 만화 형식으로 담은 책이다.

표지

수메르 신화는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의 신화와 한데 묶어 ‘메소포타미아 신화’로 분류하기도 한다만, 다른 지역 신화의 뿌리가 수메르 신화에 있기 때문에 신화적 원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냥 ‘수메르 신화’라고 하기도 한다.

수메르 신화는 현존하는 신화 기록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1으로, 그만큼 다양한 신화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같은 지역을 공유하고 있는 중동 지방의 신화들이 특히 그 영향을 많이 받아서, 수메르 신화에 나오는 요소나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이름만 살짝 바꿔 똑같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수메르 신화를 다루지만, 그것에 영향을 받아 변형되어 사용된 다른 신화를 함께 언급하기도 한다. 간단하게는 다른 지역에서는 해당 신을 어떤 이름으로 불렀는지 언급하는 것에서부터, 두 신화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지역의 신화를 가져와 수메르 신화의 연장으로써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것이 수메르 신화 원전의 내용이고 무엇이 저자가 편집해서 넣은 것인지 좀 헷갈리는 면도 있다.

이것은 이 책이 수메르 신화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SF적 해석을 다루는 것이라서 더 그렇다. 특히 유사역사학(가짜역사학)2으로 평가받는 ‘제카리아 시친(Zecharia Sitchin)’의 ‘지구연대기(The Earth Chronicles) 시리즈’를 주요 기반으로 했기에 사람에 따라 다소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3 실제 남아있는 기록과 유물에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나 초고대문명설, 외계문명기원설 등을 포함한 내용은 분명 흥미롭고, 그래서 책 자체는 재미있게 볼만 하긴 하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2차 창작된 SF 소설로서 그런 것이지 교양으로 보는 신화로서는 그렇게 적절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대게 뒤로 가면서 앞뒤가 서로 안맞거나 실제 유물, 기록 등과 어긋나는 부분 같은 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신화를 기반으로하되 일부만 취사선택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 게 아니라, 신화를 그대로 두고 거기에 해석을 붙이거나 함으로써 새로 만든 논리를 끼워넣는 식이다보니 어긋나는 부분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다.

이 만화 역시 그런 점은 피하지 못한다. 특히 역사시대에 접어들면 기존의 고고학적 해석과 충돌하는 것들이 여럿 생기면서 초반의 그럴듯함과 흥미로움을 많이 잃어버린다.

일종의 픽션으로, 한편의 신화적 SF물을 본다고 생각한다면 나쁘지는 않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하며 상상력을 순수하게 즐길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진지하게 수메르 신화를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선택하려는 거라면, 자칫 잘못된 해석을 지식으로써 받아들일 수도 있으므로, 먼저 다른 책으로 수메르 신화 원전을 알고나서 비교가 가능한 상태에서나 추가적으로 접할 것을 권장한다.

이 리뷰는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더 오래된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것들은 기록물로 남겨져 있는 게 없다. 

  2. ‘유사 뭐시기’라고 하는 것은, 얼핏 비슷한 종류인 것처럼 여기게 하는 잘못된 번역이다. pseudo는 거짓말, 가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비슷하다는 의미의 유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제대로는 ‘가짜 뭐시기’라고 번역해야 한다. 

  3. 지구연대기 시리즈는 수메르 점토판을 해독하여 쓴 것이라고 하는데, 애초에 저자는 수메르 문자 전문가도 아니고, 다분히 상상이 가미되어 있기도 하기에, 이것은 진지한 역사책으로는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