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레이코(廣嶋 玲子)’의 ‘백의 왕: 잿병아리(白の王)’는 ‘나르만 연대기(ナルマーン年代記)’ 시리즈 2부 첫번째 책이다.

표지

마법이 존재하는 익숙한 중세 판타지적인 배경에 마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하는 이 소설 시리즈는, 마족을 색다르게 그림으로써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마족(魔族)이 대게 악마에 가깝게 그려지는 기독교적인 중세 판타지와 달리 일종의 정령이나 동양의 요괴같은 존재로 그려진 것은 영어 제목(The King of White Genies)에는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애초부터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를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나르만 연대기’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마족(Genies) 이야기’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그런 기조는 이번 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이도 했던 1부 ‘청의 왕’으로부터 수십년 후를 배경으로 한 2부 ‘백의 왕’은 약속을 지키려는 한 남자와 우연히 동행하게 된 한 소녀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시대가 좀 떨어져있는만큼, 전작과의 접점이 있기는 하나, 이 소설도 개별적인 완결성이 있는 소설로 만들어졌으며, 과거의 일들은 등장인물들의 대화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루는 것으로 독립성도 잘 갖췄다. 덕분에 전작을 보지 않았거나 기억이 흐릿해졌더라도 얼마든지 소설을 즐길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잘 써내는 작가답게 이번 이야기 역시 흥미롭다. 초록색 보석이라는 신비한 물건을 등장시키고, 그것과 관련된 인물이나 이야기를 하나씩 더해가는 전개도 잘해서 과연 이 물건의 정체는 무엇이며 각자의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도 끝까지 궁금하게 한다.

마법이 특별한 능력인 세계인만큼 화려한 장면이 나오지는 않으나 환상적인 세계관과 모험도 잘 그려서 상상하는 재미가 있으며, 익숙한 요소를 낯설게 그린 것도 꽤 괜찮고, 세밀한 선만으로 그려낸 일러스트도 매력적이며 환상적이어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

다만, 원래 한권이던 것을 둘로 나눈만큼 분량이 생각보다 짧다. 그래도 적절한 곳에서 자르기는 했다만 잘 보다가 중간에 끊기는 것은 역시 좀 아쉽다.1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1부 ‘청의 왕’과 마찬가지로 2부인 ‘백의 왕’ 역시 2권으로 분권하여 발매했다. 각권에 달린 부제 ‘잿병아리’와 ‘왕의 대리인’은 그렇게 나뉜 각 권을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큰 의미는 없다. 원작이 같은 세계관의 개별 이야기라고 봐도 좋았던 것과 달리 한국어판은 나르만 연대기로 묶어 시리즈로써의 정체성을 강화했으며, 넘버링도 1부에서 이어받아 2부는 3, 4권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