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미치코(青山 美智子)’의 ‘고양이 말씀은 나무 아래에서(猫のお告げは樹の下で)’는 고양이가 나오는 신기한 신사를 배경으로 따뜻한 인간 드라마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소설은 7명의 주인공들이 각기 서로 다른 사연을 풀어내는 옴니버스 형태를 띄고있다. 그 가운데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게 소원이 적힌 다라수 나무가 있는 신사와 그곳에서 갑작스레 등장해 바람처럼 사라지는 고양이 ‘미쿠지’1의 존재다.

미쿠지는 근심과 고민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듯이 나타나서는 마치 제비뽑기 점괘를 건네주듯 다라수 잎 하나를 떨어뜨리고는 사라진다. 다라수 잎에는 마치 혼자만 알고 있으라는 듯 비밀스런 한마디가 적혀있는데 궁사는 그것을 “말씀”, “계시”라며, 운이 좋다며, 소중히 하라고 한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쫌 불편한 그리스식 예언같은 놈이다. 너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아서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쉽다. 하지만 막상 그를 떠오르게하는 상황을 맞딱뜨리게 되면 굳이 안하려고 해도 의식을 하게 되고, 자연히 그게 무슨 의미이며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를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는 계기를 만들어주는가 하면,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아채게 도와도 주고, 때론 결심을 굳히도록 등을 떨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고작 한마디의 말씀이 어떻게 그런 작용을 하는가를 꽤 잘 보여준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뻑적지근한 내용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변하는 과정도 점진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그럴듯해 어색하지 않다.

고양이 미쿠지의 존재와 그가 전해주는 말씀 다라수 잎이 지극히 판타지적인 것과 달리 그 이후의 이야기는 전혀 신비로운 것 없이 일상적으로 그린 것도 좋았다. 그 덕에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 소설을 조금은 더 현실쪽에 발을 딛고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며,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그들이 받는 위로에도 함께 공감할 수 있게 한다.

번역도 잘 된 편이다. 일본 신사(神社)와 그 신앙을 배경으로 했기 때문에 일본만의 정서나 문화도 많이 담겨있고, 미쿠지가 전해주는 말씀 중에는 일본어에서나 통하는 말장난 스러운 것도 있는데 그것을 독음과 번역, 주석을 이용해 꽤 잘 전달한다. 한국어로 재현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책을 읽거나 거기에 담긴 느낌을 이해하는데는 전혀 저해함이 없다.

미쿠지 고양이는 여러 면에서 점이나 종교의 일부 역할을 판타지적인 형체를 부여해 떼어낸 것 같다. 이것은 족집게같은 답을 요구하는 현대인의 감성과는 조금 다른 심리상담적인 측면을 많이 갖고 있는데, 어쩌면 그래서 더 쉽게 받아들일만한 존재가 아니었나 싶다.

만약 만난다면, 나에게는 어떤 말씀을 전해줄까.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오미쿠지(おみくじ)는 신사나 절 등에서 운세가 쓰인 종이를 제비뽑기하여 길흉을 점치는 일본 문화로, 만화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길, 대흉을 따지거나, 뽑은 종이를 나뭇가지에 묶는 것 등이 이를 묘사한 것이다. 제비뽑기운세, 운세제비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