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타운센드(Jessica Townsend)’의 ‘네버무어: 모리건 크로우와 원드러스 평가전(Nevermoor: The Trials of Morrigan Crow)’은 신비한 세계를 배경으로 한 ‘네버무어 시리즈(Nevermoor Series)’의 첫번째 이야기다.

표지

소설 속 세상은 현대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접점이 없는 것 처럼 동떨어진 세계관을 가진 곳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만이 존재하는 별개의 차원이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 곳에서도 더욱 이질적으로 간주되는 존재가 바로 ‘저주받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돌아오는 연대의 끝 ‘이븐타이드’에 이미 죽음이 예정되어있다. 길어야 1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우울하기 그지 없는데, 온 세상의 작은 불행 하나하나까지 모두 그들의 잘못인 것으로 취급된다.

주인공인 모리건 크로우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윈터시 공화국에서 가장 큰 그레이트울프에이커주의 총리 딸이라서 그런지 더 심하다. 때론 사람들이 이걸 이용해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행운을 빌어줬기 때문에 시험에 떨어졌다고 하지를 않나, 노쇄한 부인이 넘어져 엉덩이가 깨진 것이나, 마멀레이드가 못쓰게 된 것은 물론, 1년전에 화단이 이쁘다고 했던 정원의 정원사가 죽은것도 모두 모리건의 탓이라고 몰아세운다.

이런게 11년간 계속돼왔기 때문일까. 가족으로부터도 채 사랑을 받지 못했던 이 가여운 아이는, 우연히 자신을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낯선 사람을 따라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체재를 유지하고, 미래를 잡기위해 원드러스협회에 들어가기 위한 평가전에 참여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과정과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다.

전혀 새로운 세계를 그린 시리즈의 첫 책이다보니 앞부분에서는 자동으로 물음표가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잔뜩 등장한다. 용어에서부터 세계관까지 낯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인지 책 앞부분에 용어 설명을 따로 정리해 놓기도 했는데, 다행히 따로 용어를 익히거나 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쫒다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쓰였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의 이야기 역시 흥미롭고 재미있게 잘 그렸다. 세계의 모습이나 문화, 그리고 마법들은 모두 신비로워서 보고있자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될 정도다.

새로운 세계로 건너간다는 점이나 원래 있던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다가 새로운 세계에서 큰 역할을 한다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해리포터를 떠올리게도 했는데, 장르상의 유사성이라고 할만한 정도라 딱히 따라했다거나 하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비기’를 보는 것은 나름 재미요소이기도 한데, 주요 캐릭터들을 제외하고는 특징이 크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만큼 등장인물이 많았던데다, 아직 첫번째 이야기라 각자의 이야기를 다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일부 전개나 개연성이 매끄럽지 않은 점도 있었다. 물론, 말도 안된다 싶을 정도는 아니고, 일부는 떡밥이라 후반에 가서 해소되는 것도 있었으나, 그래도 묘한 찝찝함을 남겼다.

주인공인 모리건 크로우의 성격을 헷갈리게 그린것도 아쉽다. 때론 당차고 할말은 하는 성격처럼 그리는가 하면, 또 어떨땐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기비관적인 것처럼 그렸기 때문이다. 이게 행동으로까지 이어져 앞뒤가 안맞는 모습도 꽤 보인다.

이야기 속 반전도 조금은 너무 뻔했다. 그래서 반전이 드러나는 지점에서도 딱히 놀랍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그럴 줄 알았달까. 그래서 한편으론 좀 더 교묘하게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비슷한 전개가 많아 감추는 건 한계가 있었겠다 싶기도 했다.

번역도 조금 아쉬웠다. 나름대로 원문을 살리며 어떻게든 번역해보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기는 했다만, 번역에 사용한 단어 선택이나, 번역을 할지 아니면 독음을 할지 선택한 것들이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원문이 가진 암시나 뉘앙스가 사라진 것도 있고, 말장난도 거의 살리지 못했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잠시 뒤쪽에 재쳐두고 생각해도 좋을만큼 작가가 그린 판타지 세계는 정말 매력적이다. 거기에 담긴 소녀의 성장이나, 우정과 애정을 알아가는 것도 꽤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미 영화화도 결정됐고, 소설도 이후 시리즈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서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