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Avi)’의 ‘파피(Poppy)’는 뻔하지만 꽤 볼만하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우화다.

주인공인 파피는 그레이 하우스라는 낡고 버려진 집에서 살고있는 생쥐다. 생쥐 가족의 원로라고도 할 수 있고 이장같은 역할도 하는 아버지 렁워트를 두었으니, 어떻게 보면 귀한 집 딸자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파피에겐 가족에게 내려온 규칙같은 것에 얽매이지 않는, 외부에서 온, 래그위드라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뜻하지 않는 사건을 맞딱뜨리게 되면서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모험을 하게 된다.

그레이 하우스의 생쥐 가족은 좋게 말하면 ‘잘 사회화된 인간 집단’을 보여준다. 전부터 내려오는 규칙을 중시하며, 그것을 지키면서 안정적으로 살려는 모습이 그렇다. 당연히 그런 집단의 단점도 극단적으로 보인다. 오래된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점은 그러한 집단에서 나고 자라온 파피 역시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행인 점은 래그위드와의 만남이 있었고, 그것이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는 거다. 거기에 래그위드와의 사건으로 떠밀리듯 행동을 강요받은 거도 있어서 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결심을 하게 되는데, 결국엔 그게 이제까지 갖고 있던 오래된 편견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보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소설은 그걸 마치 영웅 탄생기처럼 그려냈다. 처음엔 다른 이들과 전혀 다를바 없었던 파피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틀을 깰 수 있었는지를 꽤 재미있게 그렸다.

그 과정에서 보이는 여러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은 다양한 인간상을 담고 있기도 해서 꽤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당장,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어버리는 오래된 편견이라는 것 부터가 그렇다. 깊게 들어가면 의외로 가볍지만은 않다는 말이다.

다만, 이야기 자체는 그렇게 치밀하지는 않다. 의외로 납득이 가지 않는 전개도 있어서다. 예를 들면, 미스터 오칵스와의 싸움이 그래서 별 다른 인과관계도 없이 나버리는 결말엔 조금 황당기도 하다. 적어도 두 인물의 성격 등 개성으로 인해 일이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진다던가, 모험 중에 얻은 지혜나 관계를 통해 극복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기껏 그린이를 따로 두었는데, 컬러 삽화도 아니고 삽화의 수가 적은 것 역시 아쉽다.

그래도 전체 줄거리는 고개를 끄덕일만 하고, 인간군상을 담은 것 등도 나름 잘해서 우화로서 꽤 괜찮은 소설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