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의 여왕’은 네이버 웹소설에서 연재했던 작품을 다듬어 책으로 낸 소설이다. 웹 연재를 했던 작품이라선지 쉽게 읽히며 진도가 빠른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완독했으며, 읽는 내내도 대체로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로웠다.

이재익 - 키스의 여왕 1

책 내용을 일부 담고 있으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처음에 나는 법과 미스터리라는 논리의 극을 달리는 두 분야의 만남이라는 것에 큰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사건과 증거, 논리들은 빈약하기 그지없어 너무도 허무하게 뒤집히는 것들이었다. 왜 고민하고 당황하는지 또 왜 착각하거나 트릭에 걸려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심지어 소설의 등장인물 대다수를 굉장한 실력자인 것처럼 설명해서 더욱 그렇다. 그런 인간들이 겨우 그런 구멍을 놓친다고?

어쩌면 주인공인 키스의 여왕을 부각하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된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랬더라도 정도가 심했다. 대체 논리적 사고와 정확한 증거 수집, 과학 수사는 다 어디로 갔나.

‘더블 크라임(Double Jeopardy, 1999)’과 ‘파이트 클럽(Fight Club, 1999)’이라는 두 영화를 쓸데없이 부각하고 반전과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내지르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소설이 너무 기존 작품과 유사해 표절 의혹을 비껴가려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이런 흐름을 의도하는 거니까 그렇게 해석해줘’라고 강요하는 것인지 작가의 진의를 모르겠다.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별로였다. 불필요한 사족 같았달까. 잘 나가다가 뜬금없이 새 인물들이 등장했을 때는 대체 어떤 개연성이 있는 건지 모르겠어 황당했고, 앞으로도 과연 그걸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그나마 이것도 기존 웹 소설을 단행본으로 내면서 정리한 결과라더라. 그렇다면, 원래의 연재본은 대체 얼마나 정신없었다는 얘기냐;

현실과는 동떨어진 판타지/SF에서나 나올법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웃겼다. 1권에서는 등장만 하고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는데, 중2 냄새나는 이 캐릭터들이 2권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할까 궁금한 한편 꼭 ‘이런 캐릭터들’이어야만 했나 의구심도 들었다.

웹소설로 연재할 때의 삽화들을 모두 걷어낸 것도 아쉽다.1 비록, 너무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춘 것인지라 조금 붕 뜬 느낌이 있는 것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출판사도 이러한 점과 책값 상승 등을 고려해서 결국 뺀 게 아닐까 싶다.2

키스의 여왕 연재 삽화

1권에 법정물의 면모는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미스터리물로는 다소 맥빠지고 실망스러웠는데,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로맨스물로는 꽤 매력적이었다. 성공을 위해 헤어졌던 과거의 연인이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다소 식상하지만, 그 계기와 흐름 속에 간간이 섞여 있는 법정 싸움과 미스터리 요소가 흥미롭고 사건을 따라가는데 몰입감을 줬기 때문이다. 검사와의 대결에서 논리적 공방이 오갈 때는 약간의 쾌감도 있었다. 이것들이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로맨스를 흥미롭게 메꿔준다.

진도가 빠른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이야깃거리로 1권이 끝나는데 이는 이 책이 법정 미스터리이면서 또한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이다. 각각에 분량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보니 자연스레 전체 진행은 더뎌진다. 작중 인물들의 심정을 표현하는 묘사가 많은 것도 다분히 로맨스 소설스럽다. 왜 이 책을 소개할 때 ‘로맨틱 법정 미스터리’가 아닌 ‘미스터리 법정 로맨스’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법정과 미스터리 요소가 있지만, 결국엔 로맨스 소설이라는 말이다.

1권을 막 읽은 참이고 이는 아직 반이라서 2권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와 반전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점이 기대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미스터리물로서의 기대감보다는 로맨스물로서의 기대감이 더 크다는 건 역시 좀 아쉽다. 과연 1권에서 느꼈던 부족함과 아쉬움을 달래줄 만큼 뛰어난 진행을 보여줄지, 아니면 1권과 같은 수준의 TV 일일연속극 같은 소설로 남을지 궁금하다.

2권, 2권을 보자!

  1. 다분히 하이틴 로맨스 라이트노벨 같은 ‘녹슨유리’의 삽화는 지금도 연재처였던 네이버 웹소설의 키스의 여왕 일러스트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관심 있다면 가보시라. 다만, 뜻하지 않는 스포일러에는 주의. 

  2. 컬러 삽화는 책값을 크기 올리게 마련이다. 아니면 대충 넣었다가 욕만 먹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