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황후 1’은 꽤 흡입력이 대단한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다.

표지

제목만 봤을때는 일종의 복수극처럼 보인다. 이혼당한 황후가 그대로 내쳐지고 마는 게 아니라, 재혼해서 전과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서 자신을 버렸던 사람들에게 사이다를 날리는 이야기가 연상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막 책을 펼쳤을 때는 정말로 그럴 것 같아 보였다. 처음부터 이혼하는 장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일종의 정해진 결말로 두고, 과거로 돌아가서 이들이 거기까지 이르게 된 경위를 그리는 방식으로 구성한 것은 살짝 예상외였다.

이런 전개방식은 긴장감이 생기지 않는다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어서다. 어떤 사건이나 연분관계가 등장하고, 그 때문에 주요 인물인 황제나 황후가 흔들리는 모습을 내비친다 하더라도 그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이미(처음부터) 알고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라면 또 몰라도 로맨스에는 그리 적합한 전개방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괜히 부수적인 책임까지 덧붙는다. 과연 황제는 어째서 그렇게 훌륭한 주인공 황후를 두고서도 이혼까지 결심하게 되었는가를 독자에게 분명하게 납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이혼 후 즉시 재혼이라는 신선한 장면만을 연출하기 위한 설정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려면 말이다.

그러나, 결론만 말하자면, 잘해도 보통이고 못하면 욕만 먹는, 이 스스로 뒤집어 쓴 시련을 결국 제대로 이겨내지는 못했다. 가장 중요한 상대 캐릭터의 매력 어필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황후에게서 황제를 빼앗아가도 납득할만큼의 매력을 (작중에선 법적으로 인정하는 정부이긴 하다만) 불륜 상대인 라스타는 전혀 보여주질 못했다는 말이다.

황후 쪽은 1인칭 시점까지 써가며 인간적인 됨됨이나 황후로서의 품격까지도 그려냈는데, 그에 비하면 라스타의 취급은 거의 버림패처럼 보일 정도다. 아니, 오히려 황후 입장에서의 묘사가 많다보니 그녀의 민폐스러운 면만 더욱 부각되어 보면 볼수록 더욱 매력이 없을 뿐 아니라 그저 짜증만을 유발한다. 그녀가 속으로는 얼마나 추잡한 꿍꿍이를 꾸미고 있던, 최소한 제3자에게 보여지는 겉모습만이라도 한없이 사랑스러웠어야 했는데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한거다. 자연히 그녀에게 흠뻑 빠진 남자들도 무슨 약에 취한 것 마냥 이상해 보인다.

그 뿐이랴. 비록 여러 시대가 섞여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세풍의 시대극 분위기인 이 소설에서 오로지 그녀와 그녀 주변의 측근(시녀)들만이 이상한 생각과 행동으로 시대상을 거스른다. 마치 이세계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 같은 이 어색함은 이 소설의 시대극으로서의 면모도 크게 떨어뜨린다. 지나치게 이단적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소설 속 세계에 빨려들어간 현대인도 아니고, 그녀의 행동은 물론 그런 짓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다는 그런 의식의 흐름마저도 전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렇다보니 황제와 황후 그리고 라스타가 그리는 삼각 관계나, 황후의 재혼 상대까지를 포함한 사각 관계로 인한 애련함 같은 것 보다는 빨리 사이다 재혼이나 하고 그 후 무슨 일을 벌일지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용 외적으로도 채 다 수정되지 않아 이상한 문장이 더러있어 읽는 호흡을 끊는 것이나, 기껏 열심히 그린 삽화들을 책에는 하나도 수록하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전지적 3인칭 시점과 황후 1인칭 시점을 오가는 서술도 딱히 그것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뭔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굳이?’ 싶었다.

그래서, 별로였냐고? 그건 아니지.

오히려 상당히 재미있게 본 편이다. 저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흥미롭고 흡입력도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중세풍으로만 설정한 게 아니라 중세풍 판타지 세계로 설정한 덕분에 ‘하인리’와의 관계도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었고, 또한 이후 재미있는 이벤트로 어떤 마법이 등장하게 될지 기대하게 만들기도 했다.

황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것도, 주인공인 황후의 감정에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단지 그녀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 자체가 (라스타와는 달리) 분명히 납득할만한 선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툭툭 끊어지게 이벤트 위주로만 띄엄띄엄 그리지 않고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서 이어지게 그린 덕에 감정선이 중간 중간 끊기지 않는 것이나, 황후로서의 일상 등을 그리면서 캐릭터와 세계관을 세세하게 보충하는 것도 좋았다.

덕분에 전체적인 만족도는 나름 높아서, 책을 덮고나면 바로 다음 권을 보고 싶게 만든다.

다만 한가지 걱정스러운 것은, 자칫 노잼인 ‘재혼 상대 찾기’ 식의 전개로 흘러가지는 않을까 싶다는 거다. 제발 그것만 아니면, 계속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