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와 골디’는 인간과 로봇, 의미 등을 찾아가는 로봇들의 모험을 그린 SF 소설이다.

표지

소설은 최신형 탐사로봇 ‘로저’를 낯선 행성에 내려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로봇은 자신의 존재의의를 다하기 위해서 여러 곳을 탐험하고,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보낸 절대자가 말한 ‘의미있는 정보’를 찾고자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이 행성이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자신에 의해 처음 탐험되는 곳이 아니며, 자신과는 다른 목적의 여러 로봇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들은 인간이 거짓말쟁이이며 자신들은 버려진 것이라고 하는데, 그에 혼돈스러워진 로저는 진실을 찾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얘기하는 ‘소년’이 있다는 곳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미지의 행성에서 벌어지는 로봇들의 모험을 그린 이 소설은 일단 SF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나 세부 묘사 등은 과학적인 것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들의 여행이 인간이나 인간성, 존재의미와 신 등 인간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며 일종의 영웅서사처럼 그려졌기 때문이다. 뒤의 저자의 말을 보면 이런점은 애초에 의도한 것인 듯 한데, 이게 더욱 이 소설이 SF같지 않단 느낌이 들게 한다.

일부 장면이나 묘사 등이 썩 과학적이지 않아서 더 그렇다. 마치 생물처럼 정신을 잃거나 깨어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전기충격을 가한다는 것은 살짝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설사 일부 바이오 조직을 사용한 하이브리드 로봇이라도 주요 부품에 손상이 갈 수 있기에 고전압을 흘리는 전기충격은 꺼려질 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 거의 전기 전자 부품으로만 이루어진 기계처럼 묘사했으면서도 구조로봇이라는 것이 그런 행위를 서슴치않고 하는 것이나, 그걸로 늘 긍정적인 효과만을 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어쩌면 처음에는 인간 또는 인간과 유사한 생명체였다가 나중에 설정만 로봇으로 바꾼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들이 인간처럼 진화하는 과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서 더 그렇다. 대체 언제 이들에게 ‘로봇같은’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등장하는 로봇들은 거의 처음부터 인간처럼 진보된 상태로 나온다. 그래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로봇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인간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은 SF라기보다 그저 로봇을 소재로 한 판타지같기도 하다. 이건 소설이 다루는 주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야기 속엔 로봇이나 인간, 혹은 그 차이에 관한 질문이 많이 담겨있는데, 그런 철학적인 고민은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SF 설정이나 묘사가 아쉬웠다면, 문장은 적잖이 실망스럽기까지한데, 한국 작가가 쓴 한국어 소설인데도 허섭한 영어 직역본에서나 볼법한 이상한 문장들이 버젓이 등장해서다.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나 발음을 이용해 살짝 변형된 의미를 던지는 게 그렇다. 그 정도는 상식이라는 듯, 당연히 작가가 원하는 방식대로 번역/역번역해가며 읽어야 한다는 듯 딱히 설명을 붙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갑자기 얘들이 뭔 쌩뚱맞은 소리를 하나 싶게 한다.

혹시 영어 책 출간을 목표로 쓴 것을 번역해서 낸 건가? 아무리 그래도 한국인이 한국어로 읽을 책을 그런식으로 만들면 안되지. 한영대역본도 아니고, 이건 좀 너무 성의가 없잖아.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