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있으니, 애니를 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원작의 이름이 아깝다

암굴왕을 상당히 재미있게 봤던 나는, 곤조의 다른 작품 중 하나인 “로미오x줄리엣”을 상당히 기대했다. 그 이유는 원작이 있는 애니였기 때문이다.

곤조가 망했다(?)고는 하지만, 원래 있던 이야기를 개작한 애니는 꽤 완성도가 있었다는 평을 들었기 때문에 암굴왕에 감탄했던 나는 자연스레 그 정도의 수준을 기대했던거다.

결론은.. 전혀 기대에 못미쳤다. 오히려 ‘그러니 망했지’라는 비아냥만 늘었달까.

왜 사랑에 빠지는거야?

사실 원작에서는 두 가문의 원한이 명확하지 않다. 대체 왜 두 가문이 그렇게 원수가되서 싸우는지 정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반면에 (사랑 얘기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둘의 사랑은 명확하게 표현되어있다. 첫눈에 반한것에서 부터 점점 더 깊어져 주체할 수 없게 되는 모습이 (그래도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나름 잘 그려져있다.

반면에 설정을 바꾼 애니에서, 두 가문의 원한 관계는 명확하다. 게다가 줄리엣은 복수심에 불타도 좋을만큼 그 당시에 대해 뚜렷이 기억하고있다. 그러나 둘이 왜 사랑에 빠졌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그저 떨어지려고 했을 때 손을 잡아줬기 때문에?

그때는 뚱~하더니만 그 직후 갔던 무도회에서는 마냥 사랑에 빠진 표정을 짓는것은 이해가 안된다.

지가 좋아한다는 여자도 몰라봐?

머리 모양이 다르다고 얼굴도 못알아보냐? 냄새라도 눈치챘어야지.

줄리엣은 정체(?)가 들통나기 전에도 몇번씩이나 로미오 앞에 나오지만 로미오는 그렇게 좋아한다던 줄리엣을 단 한번도 알아보지 못한다.

너 진짜로 좋아하는거 맞어?

왜 복수에 불타지 않는가

설정이 극명한 권선징악으로 바꼈기 때문에 줄리엣의 복수는 지극히 정당했다. 줄리엣은 꼭 복수가 아니더라도, 몬태규의 지배에 불만을 품어, “붉은 바람”으로 활동 하고 있었으며 백성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었다.

줄리엣이 붉은 바람으로 활동하는것은 꽤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그에게 세상(?)을 바꾸고자하는 신념이 있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고통에 아파하고 분노할 줄 알아야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시민들이 짓밟히고 동료들이 피흘려도 줄리엣은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로미오와 함께 도망갈 뿐.

붉은 바람 사냥 때문에 무고한 시민들이 붙잡혔을 때도 결국 그들을 구해낸건 줄리엣이 아니라 싸울줄 모르는 일개 의사였다. 근데 의사 양반.. 당신 몸놀림, 의사같지 않았어;; 당신 꼭 브레이브 하트 같았어; 이름도 란슬롯이구랴. ..하지만 당신은 목숨 바칠 상대를 잘못골랐어. -_-;;

왜? 암굴왕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갔는가.

로미오가 또 만날 수 있냐고 물을때 얼굴 붉히며 “응”이라고 할 때는 정말 이런 생각밖에 안들더라.

“미친년.. -_-;”

원작의 대사를 읊게하고 싶었는지, 10화에서는 상황에도 안맞는 연출이 등장하기도 한다. 줄리엣이 테라스에 있고, 로미오가 그 위로 올라가 둘이 사랑을 얘기하는 장면 말이다.

..망할만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곤조..

재미있어 질려고 하다가??

후반에 몬태규가 캐플릿가를 증오하는 이유에 대한게 잠깐 나온다. 거기서 나는 사실 조금은 기대를 해봤다. 심심하고 재미없기만 한 이 이야기가 뒤집어질만한 뭔가가 나올까.. 하고 득없는 기대를 해본거지;

몬태규의 이야기는 좀 더 잘 살렸으면, 전체적으로 훨씬 재미있어질만 한 얘기였다. 그 전까지는 “순백한 선”으로 생각됐던 캐플릿가가 사실은 추악한 면을 숨기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말이다.

사실 몬태규가 나쁜놈이 아니라 캐플릿에게 복수를 한 것 뿐이었다고 한다면, 게다가 그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시민들 모두가 외면하고 학대했었다고 한다면 줄리엣에 의한 복수(?)는 의미가 퇴색되고 선악의 구분은 모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졌겠지.

하지만 몬태규의 일화는 그저 단순한 일화로 끝나버리고 만다. 몬태규라는 케릭터의 비중을 더 살렸으면 이야기가 훨씬 풍부해졌을거다.

애니의 목적은 염장?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모두에게 축복받아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둘의 사랑을 지켜보는 관객은 그들의 미래가 불행할것을 알기 때문에 더 그들을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원작에서는 그런 느낌이 잘 살아있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애니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다. 오히려 시민과 동료들을 배신하고 로미오와 함께 도망이나 간 주제에 이대로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소망하는 줄리엣이 싸가지없고 아니꼬와보인다.

이미 관객의 마음이 이런데 얼굴 붉히면서 눈 떨리며 둘이 쳐다보는 장면은 왜 그리 많은지.

그럴거였으면 애초에 “복수”나 “혁명”같은 주제로 일을 벌리지 말고 사랑얘기만 했으면 좋을 것이었다. 동료를 버리고 남자랑 도망가기나하는 지도자가 등장하는 혁명 이야기를 대체 어떤 인간이 고운 눈으로 볼 수 있단 말이냐.

무리한 판타지

공중 도시라는 설정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면, 결국엔 로미오와 줄리엣을 죽이려고 무리하게 도입한게 아닌가 싶다.

애초에 에스카라스가 그렇게 힘있는 존재였다면, 에스카라스를 유지하기 위한 캐플릿가가 다 죽도록 내버려 둘리가 없잖아? 캐플릿가가 다 죽어갈때는 가만히 있더니, 이제와서 생존자가 하나 있다니까 먹으려고 기를 쓴다니 어이 없다.

이제까지 상징적인 의미처럼만 나왔던 에스카라스가 갑자기 막판왕처럼 등장한것은 상당히 황당했다. 그 전까지는 비록 용마같은 판타지 설정이 여럿 등장하더라도 사극 분위기였는데 말이지.

결국 뭐 하나 좋을 것 없었던 애니

주제곡을 박정현이 불러서 그점을 광고할 때 부각시키기도 했지만 노래도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 “you raise me up”을 일본어 가사로만 개사해서 갖다 붙인건데, 애니하고도 별로 안어울렸고 가사도 별로였다. 차라리 영어를 그대로 부르는게 더 나을뻔했다.

제작사 이름 나올 때 보면 “Wellthink”라는 이름도 나온다. 이거 “지옥소녀”때도 나왔던 이름인데.. 얘네가 문젠가;

암굴왕에서는 옷을 희안하게 처리한다던가 하는 새로운 시도도 있었고, 각본도 나름 괜찮았던걸로 기억한다. 특히 원작과 달리 복수로만 치닫던 백작의 행보는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로미오x줄리엣은 쓰레기에 가까웠다. 걸핏하면 얼굴에 빨간칠하고 눈이나 흔들리게 만들었지, 액션신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감정 표현같은게 잘 된것도 아니었다.

뭐 하나 좋은게 없다. 그저, 시간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