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관 구해령’은 ‘여사(女史)’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담아낸 가상역사물이다.

표지

이 이야기의 시작은 소소한 사건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중종 14년 4월 22일에 동지사 김안국이 여사(女史) 얘기를 꺼내는데, 결국 여러 이유를 대며 임금이 그 청을 거절하였다는 것이다. 조선이 굉장히 남녀유별 사회였다고 알고있는 우리에게 이런 얘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작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여러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떄문에 그를 이용할 작정으로) 여사를 허락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고, 거기에 당시로서는 다소 발칙했을 ‘혜령’이라던가 연애소설 나부랭이를 쓰는 왕자라던가 하는 인물들을 집어넣어 궁중물 특유의 무거움과 함께 유쾌하면서도 가볍고 발랄함을 가진 사극을 만들어냈다.

사실 굳이 따지고 들면 좀 억지스럽거나 말이 안되는 설정도 좀 있다. 멀리서 볼 것도 없이 당장 두 주인공부터가 그렇다. 이야기 안에는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이는 과감한 언행을 하는 인물들이 꽤 나오긴 한다만, 이들은 특히 더해서 마치 전혀 다른 시대의 인물들이 타임슬립이라도 한 듯한 행태를 보이곤 한다. 왕과 세자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궁중에서의 이야기들이 무겁고 정통 사극같은 느낌을 준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한 로맨스나 사관들의 이야기는 살짝 사극풍 현대물같은 느낌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딱히 그게 단점처럼 부각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역사를 조금 다르게 써낸 가상역사물이기도 하거니와, 그런 점들이 이 이야기를 가볍게 만들어 편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조선 라이트노벨? 그런 느낌이랄까.

이 책이 기본적으로는 작가의 드라마 대본 집필 형식을 최대한 따른 말 그대로 ‘대본집’이라 읽기에 과연 어떨까 싶던 걱정도 괜한 우려에 불과했다. 영상물과는 달리 글은 읽을 때 더욱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그를 위한 지침들이 꽤 충실하고 장면 묘사 등도 잘해서 머릿속으로 장면이 쉽게 그려진다. 대본에서나 볼 수 있는 용어나 표기같은 것도 흥미로웠다.

내용 면에서는 이야기를 크게 두 줄기로 나눠 다룬 것이 좋았는데, 두 이야기가 서로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에 각각을 즐기는 맛도 있었고, 둘이 서로 꼬이는 지점이나 사건들도 자연스러웠다. 배경을 모두 까발리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미스터리한 면모도 있는데, 그것들도 과연 다음에 어떤식으로 무엇이 밝혀질지 흥미롭게 만들었다.

드라마도 있는데 굳이 대본집을 읽어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다. 심지어 이건 영화와 원작 소설의 관계처럼 내용이 크게 각색되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더 그렇다. 하지만, 글로 읽는 것은 영상물과는 다른 그만의 맛이 있다. 구성도 이 정도면 그냥 온전한 소설이라 봐도 문제 없을 정도라, 나름 읽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2019년 7월 17일부터 2019년 9월 26일까지 MBC에서 40부작으로 방영했던 동명 TV드라마의 최종 대본집 무삭제판, 말하자면 원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반영된 TV드라마와는 용어라던가 장면 묘사 등에서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이미 TV드라마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런 점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