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마(Ling Ma)’의 ‘단절(Severance)’은 신종 질병으로 닥친 종말을 한 이민자 여성의 시선에서 그려낸 소설이다.

표지

일종의 아포칼립스, 그 중에서도 좀비 아포칼립스라 할 만하다. 소설의 종말 원인으로 등장하는 ‘선 열병’이 사람들을 마치 좀비와 같은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작가가 자기식의 좀비 해석과 좀비 아포칼립스물을 쓴 것 같다는 거다.

그렇게 봤을 때 이소설은 꽤 유별난 편이다. 사회가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인간들에대해 그리는 기존의 좀비물과 달리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그게 이 소설을 좀 독특하게 만든다.

사회 비판적인 내용은 주로 주인공의 회상에 의해 이루어 진다. 자연히 소설은 주인공이 속한 무리가 벌이는 일들을 따라가는 현재 시점의 이야기와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그린 것 두가지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 되었다.

거기에는 양식화된 미국 현대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직장인의 모습이라던가, 고향에 대한 향수나 그로부터 비롯된 정체성 등의 문제, 그리고 그를 해소하기위해 다른 것에 몰두하는 모습, 떨어져 살아옴으로서 가족으로서의 유대가 끊어져 마치 남남처럼 느껴지는 것 등 이민자(특히 중국 이민자)로서의 삶도 잘 녹여냈다.

일반적인 좀비와 달리 일종의 병환자로 그렸기 때문에 별 다른 긴장감이 일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전형적인 좀비물의 모습도 담겨있다. 망해가는 와중에 자행되는 인간들이 행태도 그렇고, 대충 망해버린 세상에서 자신만의 정의를 내세우며 강요한다던가 손쉽게 굴복하는가 하고 비굴하게 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사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려는 사람의 모습까지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두루 등장해 종말 상황에서 비틀리는 인간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이 조금은 독특한 이민자와 현대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은 좀비물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반대로 좀비물의 몇몇 특징을 가져와 도시인을 그린 것에 더 가깝다. 살아있는 시체로도 얘기되는 좀비를 도시인들이 결국엔 다다르게 될 모습 즉 생각없이 특정 루틴에 갇혀 그것만을 반복하게 되는 것을 나타내는 데 사용한 것이 재미있다. 보통의 좀비물에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재미는 없지만, 이런 좀비물도 만들 수 있구나 싶어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다소 미지의 것으로 남겨두는 것들이 있어서 개인에 따라 완독 후의 호불호는 좀 갈리지 않을까 싶다.

내용 외적으로는 작품 속 선 열병의 묘사가 좀 재미있었는데, 전염병이란게 대게 유사한 특징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를 떠올리게 하는 면도 많았기 때문이다. 별 거 아닌 것처럼 생각했다가 큰 판데믹이 됐다는 점이나 예방 차원에서 사회적인 마스크 착용 얘기가 나오고 그럼에도 개인적인 이유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던가 그로인해 비난을 받는다던가 회사가 휴가나 휴직, 퇴사, 자택근무로 돌아가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중국 남부 도시에서 발발한 것으로 그렸다는 점이 괜히 더 지금의 것과 비교해보게 만든다. 소설 자체는 2018년에 출간된 거라 지금 사태와는 무관하게 쓰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런식의 묘사가 이 소설 외에도 여럿 있었던 걸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 변종의 위험성과 중국의 문제점을 다분히 우려스럽게 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큰따옴표를 이용해 말과 서술을 나누지 않은 것은 특이했다. 심지어 문단도 그대로 이어 붙인 게 많아 생각보다 글의 양이 많다. 그러나 구분없이 죽 이어쓴 글인데도 대사와 설명은 잘 구별되고, 생각만 한 것은 ‘말하지는 않았다’며 분명히 밝히기도 하기에 헷갈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왜 굳이 일반적인 표기법을 따르지 않고 이처럼 썼는지 좀 궁금하다.

편집은 좀 아쉬워서, 이상한 문장이 꽤 많이 나온다. 앞뒤 문맥을 따져 문장을 이룬 단어를 변형하고 조합해보면 대충 어떤 말이었을지 짐작은 가나 단순 오타도 아니고 아예 잘못된 문장이 여러번이나 나오는 것은 쫌 불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