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다양한 작품들을 모아둔 단편 소설집이다.

표지

나름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의 소설집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원하는 게 뭔지 몰라 이것 저것 준비해봤어’ 라는 식이라는 얘기다. 보면 묵직한 것에서부터 가볍고 유쾌한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덕분에 한권으로 여러 맛을 느껴볼 수 있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 듯 한데, 생각밖의 장점이 된 셈이다.

단편인만큼 수록 소설들은 대체로는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는 편이다. 특히 몇몇은 각각이 가진 아이디어가 눈에 띄어서 단편으로서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작가 스스로는 ‘묵은지가 된 도넛’이라며 재때 선보이지 못해 무색해진 소설이라며 자조하기도 하지만, 나 개인부터가 딱히 시대나 유행에 민감하지 않아서 그런지 딱히 나빠보이진 않았고, 나름 재미있게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잘 와닿지 않는 것도 있었다. 내게는 ‘불용’과 ‘인류낚시통신’이 그랬다. ‘불용’은 그 자체로 좀 난해하게 읽혔다. 얼핏 보면 상실과 망각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처지나 심정에 크게 공감이 가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 ‘인류낚시통신’은, 뒤의 작가의 말을 보면, 패러디 소설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원전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러디물 특유의 재미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대신 표리부동해 보이는 행동을 보이는 인간들과 현대사회, 그리고 인간의 가치에 대한 모순을 담은 일종의 블랙코미디 같았다. 그런 점에서는 썩 나쁘지 않았는데, 이런 소설을 쓸 만큼 높게 평가하는 원전은 대체 어떤 소설일지 궁금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만간 읽어보고 비교해봐야 할 듯하다.

나는 대체로 해설이나 작가의 말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전문가의 해설은 너무 시선이 다르고 난해해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작가의 말은 대체로 감사를 전하는 글이라 딱히 읽지 않아도 그만이라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의 말은 작품에 대한 썰을 푼 것이기도 하고, 가볍고 유쾌하게 적어내서 그 자체로도 꽤 읽을만 했다. 이런 글이라면 매 소설마다 덧붙어도 괜찮겠단 생각도 든다.

작가 자신은 쉴 요량으로 막 찍어낸 것처런 이 소설집을 얘기한다만, 그래도 수준급이다. 재미도 있고 몇몇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꽤 괜찮은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