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검 로케야(Begum Rokeya Sakhawat Hossain / বেগম রোকেয়া সাখাওয়াত হোসেন)’가 쓰고 ‘암리타 셔 길(Amrita Sher-Gil / ਅੰਮ੍ਰਿਤਾ ਸ਼ੇਰਗਿੱਲ)’이 그린 ‘술타나의 꿈(Sultana’s Dream)’은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소설의 주인공인 ‘술타나’부터가 이슬람교 통치자인 ‘술탄’을 여성형으로 바꾼 것이다.1 그녀는 어느 날 안락의자에서 잠에 들었다가 우연히 사라 이모를 따라 모든 것이 다른 나라 ‘레이디 랜드’에 가게 된다.

‘레이디 랜드’는 마치 남녀의 성역할이 역전된 듯한 나라다. 물론 그렇다고 육체적인 능력이나 특징까지 반대인건 아니다. 그러나 인도와는 다르게 여자들이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활동하고 중요한 사무일을 처리하면서 나라를 운영하며, 남자들은 과거 여자들이 묵여 있어야만 했던 ‘제나나’에 들어가 집안일을 한다. 그런데도 나라는 안정적이고 풍요로우며, 범죄는 적고 안전하다.

어떻게 이런 나라가 되었고, 무슨 차이가 이런 현재를 만든 것일까. 술타나는 사라 이모를 따라 레이디 랜드의 곳곳을 돌아보며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작가가 그린 ‘레이디 랜드’는 나름 그럴듯한 역사와 장점을 잘 보여주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다. 여기에는 여성이라고 해서 능력이 없지 않으며 활동에 제약을 받아서도 안된다는 성평등 사상과 여성들에게도 그러한 모든 일들을 해낼 용기와 자신이 있다는 자긍심이 담겨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남자들이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부적절함을 꼬집어 비판하기도 한다. 그를 통해 여성 인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것은 꽤 의미가 있다.

문제는 작가가 그린 레이디 랜드가 SF라 할만큼 지나치게 비약적인 기술과 그를 통해 얻은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그래서 현실성도 떨어지고, 폭력적이라는 점에서는 딱히 남성들의 행위와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야기에서는 비록 ‘태양열’이라는 걸로 비폭력적인 것처럼 포장했으나, 그게 사람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정도였다는 것과 모든 무기를 불태워버렸다는 묘사를 보면 이게 사람마저도 태워버릴만한 것이었다는 걸 손쉽게 추론해볼 수 있다. 레이디 랜드의 높은 사회의식과 치안에 대한 얘기도 남성을 마치 잠재적 범죄자로 묘사하면서 옹호한 것이기에 썩 마뜩잖은 면이 있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분명 의미있다고도 느끼는 한편, 단순히 성 역할만 역전된 여성우위 사회가 과연 진정 바르고 성평등한 사회인 것인지 의문이 남았다. 비록 100여년 전의 작품이기는 하나 역시 아쉬운 점이다.

책의 편집도 좀 아쉬운데, 특히 삽화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것은 꼬집을 만하다. 심지어 1장을 제외하고 모두 재창작한 것이라고 했는데도 마치 인터넷에서 퍼와 붙인 것처럼 저질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금만 더 신경써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다.

  1. 한국어와 달리 몇몇 언어는 단어 자체에 성별이 있다. 예를 들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