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은 아동의 실종과 귀환, 그리고 그 이면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실종 사건의 끝은 대게 안좋은 경우가 많다. 끝내 미결로 남거나, 수십년 후 소식을 알게 되더라도 결국엔 세상을 떠난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조금 황당할 수 있는 경우가 하나 더 있는데, 본인이라고 모습을 드러내고 많은 면에서 그 사람임을 짐작케 하는 면을 보여 신빙성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사람이었던 경우가 그렇다. 금방 들통날텐데 설마 그런 일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실종 아동이 돌아온 이후 가짜임이 밝혀진 경우나 부모라고 주장하던 인물이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경우 모두 실제로 있어났던 일이다.

이 소설은 그 중 가짜 실종 아동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까발리는 이유는, 그것을 주요한 미스터리의 하나로 다루지는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홍랑은 진짜가 아님을 드러내는데 그 때문에 미스터리한 재미는 그렇게 크지 않다. 그래서 적어도 중반까지는 재이의 시점으로만 진행하면서 진위를 헷갈리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진짜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아니라는 이 입장은 뜻밖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바로 재이와의 썸이다.

귀한 외동아들인 홍랑과 골치거리처럼 취급되는 딸 재이는 비록 어미가 다르기는 하나 엄연히 같은 아버지에게서 난 친남매다. 그러니 이들 사이에 흐르는 로맨스스런 분위기나 그런 행위들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재이는 홍랑이 가짜임을 의심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문제인건, 그렇다면 동생을 사칭하는 불한당에게 정신이 나간 이상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중반 넘어서까지는 둘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이 이상한 기류 때문에 대체 뭐하자는 짓인가 하는 생각만이 짙게 남는다. 이렇게까지 로맨스를 많이 다룰거면 처음부터 동생이라는 전제를 배제할 수 있는 홍랑의 시점에서만 그리던가, 아니면 애초부터 친남매가 아니라는 식으로 설정하는 등 그에 어울리는 장치를 했으면 좋았겠다만 그런것도 하지 않아서 그저 찝찝할 뿐이다.

홍랑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애초부터 가짜임을 드러내놓고 시작한만큼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보이는 여러 모습들을 그린 것은 나름 볼만하긴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들 역시 그렇게 공감을 잘 자아내지는 못한다. 그렇게 철저했던 인간이 느닷없이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는데도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지는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보면, 애초에 홍랑과 재이의 문제도 근친 코드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당장 영화 글래디에이터(Gladiator, 2020)의 코모두스도 우린 얼마든지 잘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그건 영화 속에서 그가 얼마나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인정과 사랑을 갈망했는지나 그 가장 큰 대상이 혈육인 아버지와 누나였다는 게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비록 뒤틀렸을지언정 공감할만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굳이 역사적으로 왕가가 어떠했었다느니 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야기 전개에 충분히 필요하고 또 중요한 장치이지 않았던가.

이 소설 속 캐릭터들과 그들의 행동엔 그런 공감대와 당위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굳이 왜?’하는 의문을 남긴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