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나타낸 동명의 그림 10장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소설의 소재인 ‘십우도(十牛圖)’는 이름처럼 소를 소재로 한 10개의 그림으로, 주로 사찰 법당 외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소를 찾던 동자승이 마침내 찾아 데리고 돌아오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마음과 깨달음 등을 소와 일원상으로 그리는 등 비유적인 표현한 것이라 그 진짜 의미는 따로 살펴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십우도는 그 풀이를 큰 그림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가이드인 셈이다.

그 내용은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것이라서 그런지 썩 쉽지 않은데, 이 책은 그걸 좀 더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소설로 다시 풀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일종의 종교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단지 그 뜻을 담은 소설을 쓴 것 뿐 아니라, 소를 잡는 직업꾼인 백정 일가를 등장시켜 소를 쫒는다는 표면상의 모양새도 거의 그대로 재현해냈다. 그러면서 인간적인 고뇌를 담기위해 마치 한으로 점철된 듯한 삶을 점해줬다. 백정 가문에 맹인으로 태어나는 것도 그렇고, 수년에 걸쳐 열과 성을 다해 도살법을 익혔지만 정작 중요할 때 실패해 버린다던가, 그게 비난이나 증오, 죽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거기에 일제 수난과 6.25까지 겹치니, 그 마음이 폭발하지 않는게 더 어려워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런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이나 그렇게 쌓인 업과 울분을 해소하는 것이 썩 잘 그려진 것은 아니다. 그걸 이해하게 만드는 인간 드라마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몇 부분에서는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이는 이 소설이 비록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쓰여진 것이긴 하나 어디까지나 십우도를 풀이하고 전달하기 위한 목적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불교적인 사상이나 깨달음을 얻는 장면도 있는데, 그 과정이나 계기가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안들어서다. 어쩌면 이런 간극이 깨달음이라는게 왜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십우도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소설 흐름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이야기 중간 중간에 독백이나 대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이 스님이나 불교 수행을 했던 사람들이라서 자연스러운 듯 나오지만, 마치 선문답을 하는 것 같아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십우도를 이렇게 소설로서 써낸 것 자체는 나름 감탄할 만하다. 비유적인 소 이야기도 백정 5대를 통해 실제와 연결된 이야기로 만들어 낸 것도 잘 했다. 그러나 책을 다 보고 나도 십우도의 의미나 가르침을 알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십우도의 해설서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있다는 얘기다.

이건 반대로 소설이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로 나름 잘 풀어내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불교의 십우도 그 안에서만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중간 중간 나오는 등장인물들간의 대화도 좀 떠보이고, 소설로서의 재미도 떨어진다. 일반인들 보다는 불교도들이 보기에 더 적합할 것 같다.

소설과 해설 그 중간에 미묘하게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게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 싶다. 이는 내가 불교에 대해서 깊게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미 수행 경험이 있거나 공부를 한 사람들이 볼 때는 또 어떨지 궁금하다.

편집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은 십우도 그림이 없다는 거다. 각 장을 시작할 때 귀퉁이에 실은 조그만 그림으로 살짝 엿볼수만 있는데, 단지 소재로만 삼은게 아니라 그 내용도 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림도 제대로 된 것을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