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곳에서’는 재난과 유가족의 이야기를 시간여행이란 소재로 담아낸 SF 소설이다.

표지

누구든 후회하는 과거가 있다. 그리고 바꾸고 싶은 순간도 있다. 살다보면 ‘그것만 아니라면…’ 싶은 생각이 머릿속에 꽈리를 틀 때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때론 당사자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다시는 안 그런다거나 다음에는 어떻게 할지 생각한다거나 하는 걸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결코 지울 수 없는 큰 상흔으로 뼈 속 깊이 남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흐려지지 않으면서 끝끝내 인생을 뒤틀어버리는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후회가 곧바로 상실로 이어졌다면 특히 그렇다.

소설은 재난을 소재로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면서, 만약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보편적인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주인공 자매의 행동과 이야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소설은 중후반까지도 꽤나 몰입감이 높은 편이다.

SF 소설로서 시간여행에 관한 이론을 과학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부분 오로지 상상의 산물임을 느끼게 만드는 부분도 있으나 적당하게 그럴듯한 이야기를 던져놓고 때론 적절히 생략하기도 하면서 이야기에 대한 집중과 흐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름 흥미롭게 그려냈다.

거기에 액션성을 잘 가미했다. 몇몇은 마치 영상물을 보듯 시각적으로 묘사를 잘해서 저절로 영상화된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애초에 주인공을 그에 적합하게 설정한 걸 보면 어느정도 노린 것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이야기가 훨씬 동적이어서 보는 맛이 있다.

꼬아놓은 시간선과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꽤 재미있는 편이다. 단순하게 나열하지 않고 서술을 여기 저기에 흩트려놓음으로써 더 복잡해졌는데, 그게 계속되는 시간여행과 그로인해 나타나는 영향 때문에 잘 꼬여있는 퍼즐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부수적으로 직접언급 대신 완전한 가상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현실의 사건 사고에 자극적으로 올라타지 않고 은근히 떠올리게 만든 것이라던가, 실제 부산 지역의 모습을 소설속에 녹여낸 것도 좋았다.

이러한 장점들이 모여서 중후반까지는 시간여행이라는 나름 어려운 소재를 잘 소화해서 짜임새 높은 소설을 만들어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마무리가 썩 좋지는 않다. 엔딩 역시 다소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이는 퍼즐성을 높이려고 이야기를 온전하게 풀어놓지 않고 일부를 생략하면서(또는 숨기면서) 독자에게 이야기의 완성 일부를 떠맡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문제는 크게 2가지로, 하나는 ‘그런게 가능한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걸로 만족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떼어낼 수 없으며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끼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더욱 이상해 보이게 한다는 말이다. 그게 이 두 문제를 좀 더 심각한 것으로 만든다.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저자는 일종의 만능 치트키처럼 사용되지 않도록, 또 이야기가 더욱 복잡성을 띨 수 있도록 시간여행에 몇가지 큰 제한을 두었다. 저자가 설정한 시간여행이 나름 괜찮아 보였던 것도 어느정도는 이런 제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뒤에 가서 그게 갑자기 깨진다. 어떻게 깰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일부를 그렇게 했던 것처럼 과감하게 생략했는데, 덕분에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가 아니라 ‘설정 구멍’으로 비쳐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주인공과 독자가 몰랐던 진짜 시간여행의 비밀인데, 정작 그 가장 중요한 것을 제대로 해소시켜주지 않은 거다.

두번째 문제도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선택지였기에 전혀 공감 할 수가 없었다. 막말로 그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지 않은가. 그걸 그저 서로가 두어발짝 물러남으로써 마치 자위하듯 자기들끼리 납득해버린다고?

이들이 그런 사람(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째서 애초부터 그런 해결법을 도모하지 않았는가도 걸리게 된다. 그 전까지를 단지 보다 나은 결과를 얻어보려고 한번 해본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이들은 그 과정에서 이미 그보다 더 최악에 가까운 선택도 하려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수많은 시도들이 조금씩 쌓여 어떤 유의미를 만들어냈느냐. 그것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어째서 그게 그토록 쉽게 흐려지지 않는지를 본인들이 더 잘 알고있으면서 겨우 말 몇마디로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니 누가 봐도 웃어버릴 행동이 아닌가.

이렇다보니 저자가 의도했던 다양한 해석과 빈 공간 채우기의 재미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완결성 있는 하나의 결말조차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더 크다. 시간여행도 잘 짜여진 퍼즐 규칙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형편좋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작품 내에 일부러 비워둔 것들을 만들고 그것을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두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세의 영역에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열림이 아니라 미완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미완의 것들까지를 독자에게 상상으로 채워넣고 합리를 만들라고 하는 것은 소설로서 썩 바람직한 게 아니다.

물론 나름 뒷 이야기를 어느정도는 생각해두고 던져 놓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국엔 미묘한 경계에서 읽는 재미를 주는 소설로서의 완성보다는 이런 방식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저자로서의 욕심이 조금 더 강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