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월리스(Edgar Wallace)’의 ‘수선화 살인사건(The Daffodil Mystery)’은 수선화 한바발이 놓인 묘한 형태로 죽은 자에 얽힌 진실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표지

영화 ‘킹콩(King Kong)’의 각본가가 쓴 이 추리소설은 널리 알려져있지는 않지만 영국추리작가협회에서 꼽은 ‘100대 추리소설’에도 들 만큼 잘 만든 작품이다.

1920년에 나온 작품이라 시대상은 좀 낯설긴 하다. 작품 내에서 따로 언급이 없고 말도 등장하는 걸 보면 그 즈음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그런지 수사도 그렇게 과학적이어 보이지는 않는다. 지문 감식도 좀 어설프고, 명백한 혈흔이 있어도 DNA 검사를 한다던가 하는 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생각보다 증거보다는 상황과 증언에 더 많이 의존해 범인을 추측한다. 뒷받침해줄 증거나 자료가 부실하다는 점은 범인과 상황에 대한 가설도 상상의 범주에만 머무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증거에 치일일이 없어 모순된 상황을 만들지도 않고 등장인물들이 훨씬 자유롭게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기 때문에 소설로서는 꽤 재미있게 읽히기도 했다.

다만 추리물로서는 조금 아쉬웠는데, 흔히 추리물에 기대하는 것과는 좀 달랐기 때문이다.1 그래서 현대 추리물, 특히 퍼즐성이 강한 본격 추리물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좀 어설퍼 보일 수도 있을 듯하다. 등장인물 사이에 오가는 로맨스도 단순하게 첫눈에 반했다는 식이라서 딱히 공감도 가지않았고, 역할에 혼란을 주기도 했기 때문에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좋았던 것은 이야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이 보여주는 독특한 활약상들도 그렇고, 작아 보이던 사건이 점차 몸짓을 불려가는 것이나 거기에 여러 비밀들을 심어놓고 이야기와 함께 조금씩 풀어내는 것도, 그런 여러 이야기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낸 솜씨도 좋다. 그래서 거의 긑까지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마무리는 조금 급전개가 된 느낌도 있는데다 굳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도 잘 와닿지는 않아서 너무 형편좋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기왕이면 좀 더 사실을 파악하고 진상을 추리해 가는 과정이 그려졌다면 좋았을 것 같다.

엔딩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아서 나쁘지 않았는데, 그게 그들의 향후를 궁금해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부 캐릭터를 살려, 지금과는 다른 조합으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건을 만나는 이야기를 그린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 «스포 주의» 이야기의 전말을 추리가 아니라 고백을 통해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