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루이스(Roy Lewis)’의 ‘에볼루션 맨(The Evolution Man: Or, How I Ate My Father)’은 원시인들의 진화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표지

사실 엄밀히 말해서 이 소설은 오롯이 원시인들의 생활상을 그린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는 조금 어긋난 위치에 있다. 작품 속 원시인들이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속도로 긴 기간동안의 진화를 한꺼번에 이뤄낸다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현대인의 시점으로 역사와 진화에 대한 개념과 흐름 등을 알고 있다는 게 그렇다. 소위 ‘제4의 벽’이란 것을 넘나든다는 얘기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허접해질 수도 있는데, 다행히 이 소설은 그걸 무리하게 과용하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언급도 아버지의 진화에 대한 갈망이나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했는데도 여전히 제대로 설명되지 않거나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것들도 있었다. 근친혼을 금지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최소한 ‘그럴 수도 있지’ 정도로는 납득을 시켜줬으면 좋겠는데, ‘아버지’라는 권위를 이용해 억지로 밀어붙인 식이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깨우쳐가는 선사시대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며 그렇게 발전해나가는 흐름도 나름 자연스럽게 잘 짠 편이다. 그래서 시대가 어긋난 이야기들을 하는가 하면, 1대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육체적인 변화를 일으키는데도 불구하고 그것 자체가 완성도를 크게 떨어뜨리거나 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건 이 책이 단지 재미를 위한 소설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 역사를 한 가족의 이야기로 함축해 담은 학술적인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에는 인류가 최초로 불을 얻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불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나, 익혀 먹음으로써 ‘요리’라는 개념을 깨우치고, 결국에는 무기를 만들어 지구의 영장으로서 서게 되는 것까지를 빠른 호흡으로 그려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일종의 ‘가설’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꽤나 현실적이고 그럴듯 하기도 했다.

과거에 나는 비슷한 내용을 영화로 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내 솔직한 감상은 ‘연구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화나 기술 등을 대부분 다른 부족으로부터 얻는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그것을 어떻게 발명(또는 발견)했는지까지는 가설로조차도 보여주지 못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것들을 (비록 꼭 그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싸한 이야기로 보여줌으로써 그때에 비하면 훨씬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알게 했다.

인류 역사와 진화사를 담았다는 학술적인 측면을 빼고 봐도, 이 소설은 소설 그 자체의 재미 때문에 가치있다. 이들이 매번의 상황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고, 단지 기술적인 측면 뿐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점차 발전해나가 현대인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하는 인간의 욕심이나 정치적인 면모들을 그린것도 괜찮았다.

생각해보면 꽤 폭넓은 이야기를 한권에 다아낸 것인데, 그러면서도 어색하거나 부족함이 없게 아우러낸 저자의 글 솜씨가 새삼 감탄이 나온다.

2015년엔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Pourquoi j’ai pas mangé mon père, 2015)로도 제작되었고, 연극으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는데, 그것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도 궁금하다.

영화 포스터

아쉬운 것은 한국어판에 기껏 카카오프렌즈의 초기 캐릭터를 만들었던 일러스트레이터 ‘호조(hozo)’를 썼으면서도 정작 별 그림이 실려있지는 않다는 거다. 그림이라곤 표지 캐릭터와 인물관계도, 그리고 내지 1컷 뿐인데 기왕 고용한 거 좀 더 본문 일러스트도 넣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사시대의 이야기인지라 글 만으로는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동물이나 모습 등이 있어 더 그렇다. 거기에 삽화를 넣었다면 더 보기 좋지 않았을까.

주석도 조금 아쉬운데, 과거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만큼 낯선 이름들에 좀 더 주석을 넣어주었으면 편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현대의 이름들을 사용했기에 찾아보기는 쉽겠으나 그럴려면 책에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마무리를 완결성 있게 한 게 아니라 갑작스레 끊은 것도 좀 아쉽다. ‘아버지 먹기’나 연속성, 사회제도 따위도 좀 뜬금없이 뱉어낸 느낌인데, 이게 불을 얻는 과정 등을 그럴듯하게 잘 묘사했던 것과 비교되어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