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훙웨이(李宏偉)’의 ‘왕과 서정시(国王与抒情诗)’는 문자를 소재로 한 SF 소설이다.

표지

처음 이 소설을 펼쳤을 때는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었다. ‘문자’를 소재로 했기에,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영어나 라틴어를 소재로 한 여러 인문학이나 소설 등에서 그 공감할 수 없는 언어적 또 문화적 간극에 아쉬움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어 문자인 한자를 소재로 했다면, 이 소설 역시 끝에 가서는 도저히 함께하지 못할 어떤 간극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거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요소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물론 중국인이 나오고, 중국을 배경으로 하며, 중국 문자와 중국 문화가 여럿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깊게 파헤치고, 그 사소한 것 하나로 이어지는 큰 차이를 이야기의 주요 내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 보다는 답답해 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야기는 꽤 묘한 느낌을 주는데, 그건 소설의 배경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라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겨우 몇십년 후의 미래를 그린 것이어서 그런지 인물들의 이야기는 지금과 크게 다를 것 없어 보이는 한편 소설 속에 등장하는 기술이나 그로인해 바뀐 사회상은 꽤나 먼 미래를 상상케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의 주요 소재로 문학이나 전통 문화가 등장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미래를 그린 SF이면서도 묘하게 과거나 현재가 함께 혼잡하게 섞여있는 느낌을 준다.

자살한 작가의 사유를 찾는다는 것에서 조금은 미스터리적인 성격도 띄는데 이것도 소설을 계속해서 흥미롭게 보게 만들었다.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이 맞는지 조사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하는 것들이 묘하게 탐정소설을 연상케도 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내용이 꽤나 철학적인 면도 있어서 그것을 두고 곰곰히 따져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책의 챕터 구성이나 문장은 꽤 재미있는 시도처럼 보였는데, 이 점에서는 처음 걱정했던 언어와 문화적인 차이가 좀 드러났던 것 같다. 원작의 특징을 제대로 살릴 수는 없었던 것 같달까.

이는 일부 번역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는데, 중국어는 한국어와 달리 언어 자체에 존댓말과 반말이 없어서 그런지 일부 문장이 어색한게 눈에 띄었다. 언어 차이로 인해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고도 할 수 있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