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있으니,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실망스러웠던 기대작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 3부작(The Lord of the Rings Film Trilogy)을 드디어 봤다.

원래 책을 볼려고 했었는데.. 계속 끝까지 못보고 있다가, 결국엔 영화로 봐버렸다.

하나 하나가 3시간이 넘는 장편이라서 3일에 걸쳐서 봐야했다.

다 보고난 감상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중세 판타지의 기념비적인 작품이긴 하겠지만, ‘재미있냐’,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글쎄요’라고 하겠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두서없이 몇가지를 적어본다.

중세 판타지의 정석

지금은 거의 공식화되어버린 ‘검술사 인간’, ‘활쓰는 엘프’, ‘도끼쓰는 드워프’, 그리고 ‘강력한 마법사’라는 파티를 처음 등장시킨게 반지의 제왕이 아닌가 싶다.1

엘프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공식도 나온다. 엘프는 죽지 않는한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축복받은 종족이기 때문에 인간은 한낯 벌레로 볼 수도 있다. 엘프 자신들과 비교하자면 너무 어리고 어리석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종족과 시간을 뛰어넘어, 자신의 영생을 포기하면서까지 인간을 사랑하는 엘프가 등장한다. (허~)

드워프가 그들의 욕망때문에 멸망하는 내용도 나온다. 가장 훌륭한 광산인 ‘모리아 광산’은 너무 깊게 팠기 때문에 고대의 악마라는 ‘발로그’까지 나왔고, 결국 오크들에게 전멸당했다.

이런 내용들은 후에 “로도스도 전기”와 같은 유명한 판타지 물에서도 거의 그대로 사용한다. 말하자면 중세 판타지의 정형화된 공식을 만든 원조라 할 수 있달까.

무능한 주인공

표면상 주인공은 프로도이지만, 사실상 주인공은 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프로도의 잣은 외도(?)를 막아내며 골룸의 마수에서 구하고 끝내 운명의 산으로 그를 이끌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한다.

영화 내내 프로도는 거의 쫒기고 당하며 도망다니기만 할 뿐, 실제로 칼을 들어 싸우는것은 대부분 샘과 그 외 동료들이다.

반지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프로도는 너무 볼썽사납다. 당할때마다 울먹이면서 구해달라고 징징대기나하고 말야. -_-;;

가장 뛰어난 전적을 보여준것은 (아마도) 레골라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활 솜씨는 정말이지 신기에 가깝더라.. (멍~)

마법을 쓰지않는 그들이 정말 마법사?

책에서는 과연 간달프의 활약이 어떻게 그려졌을까?

영화에서 간달프는 마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총 3편에 걸친 간달프의 활약 중 마법을 사용한 장면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래서 3편 마지막 부분에서 ‘나즈굴’에 대항하기 위해 매를 소환한 것도 그저 의아할 뿐이다. 왜 이제야? 전에도 나즈굴 때문에 고생한적 많았는데, 그때는 왜 소환 안했더란 말인가.

마법사의 능력을 제때 사용하지 못하는 간달프는 좀 이상하다. 영화 내내 그가 보여준 능력은 대부분 ‘지혜’와 ‘칼 + 지팡이 부림술’이었다.

흰색의 마법사였던 아이센가드의 사루만도 별로 마법은 안쓴다. 그가 한것은 오크와 트롤 등등을 가지고 교배실험을 해서 더 뛰어난 전사 ‘우르크하이’를 만들어낸게 거의 전부다.

실제로 앤트들에 의해서 사루만의 군대가 전멸당하고나자, 그는 절망해서 탑위로 도망가지 않았던가. 탑에서 떨어질때도 나는것 하나 하지 못해 그대로 죽어버린게 그 위대하다는 전 흰색의 마법사 사루만이었다.

진짜 당신들 마법사 맞는겨? 하는 짓은 꼭 ‘책사’나 ‘화학자’, 아니면 ‘생물학자’ 아닌가. 그럴거면 이름을 바꾸라고;

서양인들의 차별 의식?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착한 사람들은 서쪽에 있다. 그리고 악의 무리들은 동쪽에 있다.

착한 사람들은 백인이고, 나쁜 놈들은 동양인과 괴물들이다.

인간 중 악에 가담한 놈들은 동양인이다. 거대한 코끼리 비슷한 짐승을 타고 다니는거나, 온몸을 천으로 감싼 복장이나, 문신이나 장신구 등을 보면 인도 등을 비롯한 동양권을 떠올리게한다.

반지의 제왕은 어쩌면 동서양의 전쟁을 모티브로 만든게 아닐까? 결국 “착한 서양인들이 악한 동양인들을 물리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식의 뻔한 미국식 스토리를 연상시켜서 뭔가 껄끄러웠다.

사우론은 왜 인간을 멸망시키려고 하는가?

사우론은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절대 반지를 만들었고,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진군한다.

하지만, 왜?

그는 인간에게 괴롭힘을 당한것도 아니고, 인간에게 컴플렉스가 있는것도 아니다. 하물며 인간에게 꿀릴 정도로 무능력하지도 않다. 모든 반지를 제압할만한 절대 반지를 만들지 않았는가.

사우론이 인간을 멸망시키려고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하물며 ‘모든 세계의 파괴를 원해’라는 종말론적인 이유 조차도 없다.

대체 그의 존재 이유란 뭔가.

골룸은 어떻게 계속 살아있는가?

원래 호빗이었던 골룸은 반지의 마법에 의해서 장수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빌보에게 반지를 빼앗기면서 그가 더 장수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는 어떻게 그렇게 정정하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반례로 빌보를 보자. 그는 간달프의 도움으로 반지로부터 벗어난 후, 급격히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프로토의 여정이 13개월 동안이라고 했으므로, 그가 리븐델에 머무르던 때는 반지를 떠난지 불과 몇개월 안된 때였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반지를 가지고 있었을때와는 완전 딴판으로 늙어있었다. 게다가, 4년후엔 거의 죽음에 다다르지 않았나.2

그런데 골룸을 보라. 그는 빌보에게 반지를 뺏기고 수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노쇄하지 않았으며, 프로토와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정정했다.

장수를 보장받지 못한 종족이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이 단순히 반지 때문이라면, 반지가 사라지고 난 후엔 빌보처럼 노쇄해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저 반지의 최후를 위해서만 살려둔 것이었다면, 이 무슨 말도안되게 허술한 설정이냐.

맡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장애인 오크 연합

마지막에 프로도와 샘이 오크의 갑옷을 두르고 오크들의 대열에 끼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오크들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건 굉-장히 의아하다. 심지어는 우습기까지 하다. 오크들의 코는 장난이 아니라지 않았나.

중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못본것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사우론의 군대는 왜 해산하는가?

반지가 ‘운명의 산’의 용암에 빠지고, 용해되서 사우론도 죽게 됐을 때.. 왜 그의 휘하에 있던 오크 군단은 도망갔을까?

지반이 무너지면서 다수가 죽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인간 연합보다 수적 우세에 있었고 마음만 먹었다면 그들을 제합하고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도망가?

그들이 사우론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마법 생명체라 사우론이 죽으면서 소멸됐다면 또 모르겠다. 엄연히 종족으로 존재하는 생명체들인데 갑자기 없어진다는건 말도 안되지 않나?

화학 무기는 왜 없나?

반지의 제왕은 여러 시대가 뒤섞인 작품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주된 무기는 칼이다. 그리고 창, 활, 투석기 등이 사용되는것으로 보아 화약이 등장하기 전의 중세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간달프는 빌보의 생일 파티때 폭죽을 선보이며, 사루만도 헬름 협곡을 공략할 때 폭탄을 사용한다.

그럼 화약이 어느정도 발달한 시대가 배경인가?

그렇다면 칼에 의존하는 전쟁 방식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화약을 사용할 수 있다면 총이나 대포는 고사하더라도 폭탄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폭탄이 있다면 투석기와 함께 사용하기만 하더라도 손쉽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내내 투석기로 던지는것은 무너져 내린 성벽이나 불붙인 돌덩이 같은것 뿐이었다.3

왜? 화약은 어따두고?

사루만이 죽으면서 오크 진영은 화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간달프는? 그는 왜 전쟁에서 화약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전체적인 감상은?

볼만은 하다. 그러나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과연 책은 어떨지 궁금하다. 하지만, 영화로 인해 원작에 대한 흥미도 떨어진것이 사실이다.

  1. 정확하진 않다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반지의 제왕이 가장 오래된 중세 판타지 물이다. 

  2. 엔딩 부분을 보면, 완전히 노쇠해서 최후를 평안한 곳에서 맞기위해(?) 엘프들과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3. 사실 이렇게까지 접어서 생각할 필요도 없다. 영화 초반에서 간달프는 폭죽을 사용했는데, 폭죽 기술이라는것은 일종의 로켓 기술과 같기 때문이다. 즉, 쏘아서 멀리 날려보내고 원하는 위치에서 터지게 하는 고급 기술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이는 다시말해 대포를 만들 충분한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뭣하면, 폭죽 그 자체를 무기로 써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