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The Pedant in the Kitchen)’는 늦깍이 요리인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의 요리 에세이다.

표지

요리를 소재로 한 에세이는 별로 특별한 게 아니다. 요리와 음식이란 게 워낙에 모든 사람들의 공통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책에 유독 관심이 갔던 것은, 저자가 그 까칠한 소설가 줄리언 반스라서다. 그의 소설엔 늘 그만의 것이라 할만큼 독특한 무게감이 있었는데, 그런 그가 이토록 가볍고 대중적인 요리 에세이를 썼다니 과연 어떻게 써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외로 평범하다. 심지어 그의 글이라는 걸 생각하면 묘하게 더 가벼운 느낌도 든다. 이건 단지 느낌일 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래서 이제까지 봤던 그의 책 중에서는 드물게 편하게 본 듯하다.

요리 에세이이자 요리책 에세이인 이 책은 스스로를 ‘현학적’이라고 하며 정확한 레시피를 요구하는 저자가 여러 요리책을 읽고 직접 만들어보며 느낀 일종의 ‘딥빡’을 담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어판의 제목은 꽤나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읽다보면 그 상황이 이해되면서 정말로 그런 대사를 뱉어낼 것 같아서 묘하게 재미있기도 하다.

그의 그런 딥빡은 어떻게 보면 그가 영국인이고 그래서 그 악명높은 ‘영국 요리’를 하다보니 생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론 영국 요리나 그것을 담은 요리책과는 큰 상관이 없다. 그러긴 커녕 오히려 요리 종류나 국가와 상관없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심지어 요리를 그리 그리 많이 하지 않는 나도 보면서 자연히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아리송한 용량 표현이 그렇다. ‘약간’이라던가, ‘적닥량’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심지어 저자마다 다른 표현을 쓰기도 해서, 요리책을 볼 때 가장 먼저 그 책의 저자가 사용한 기준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레시피를 제대로 보고 있는건가 의아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레시피가 제대로 된 것인지 의심을 하게도 만드는 거다.

책에는 요리책을 쓴 요리사들마저 자신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지 않는다거나, 사실은 책에 쓴 것보다 나은 걸 쓰고 있다던가, 같은 요리인데도 책에따라 재료와 조리법이 다르기도 하고, 정작 그런 업소에서가 아니면 도무지 따라할 수 없는 레시피라는 등 사소한 것부터 큰 불만까지 여러가지 것들이 나온다. 그게 요리책에 대한 환상을 깨는 한편 요리책을 쓰는 사람들에겐 일침게 가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걸 조금씩 비틀어서 쓴게 재밌어서 불만을 뱉어낸 것인데도 유쾌하게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절대 요리책의 화보는 실제 요리가 아니라거나, 요리책을 사려고 할 때 생각해두면 좋은 점들이라거나 유용한 내용들도 많다. 특히 요리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대충 이러저러 했다고 어물거리는 게 아니라 어떤 요리책의 무슨 레시피에 대해서 얘기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해서, 서양 요리를 즐겨하고 관련 책을 보는 사람에겐 더 유익할 만하다.

그렇기에 소위 ‘한식’요리만을 주로 하는 사람에겐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요리책이 갖는 기본적인 속성은 비슷하기에 저자가 말해주는 여러 지침들은 앞으로 어떤 요리책이나 레시피를 보든 나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책에는 요리나 요리책 외에도 작가 본인의 요리 생활을 그린 내용도 꽤 나온다. 그러면서 요리 생활이나, 요리 자체와 관련한 철학적인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저자의 요리에 관한 사상 같은 걸 담고 있기도 한 셈이다. 그럴때는 소설가답게 어려운 얘기를 진지하게 풀어내기도 한다만, 그래도 너무 어렵거나 난해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아서 딱히 부담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요리를 하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과감하게 도전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그로인한 쓸데없는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별로 무겁지도 않으니 부담없이 들고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