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Jhon Bunyan)’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 天路歷程)’는 저자가 꿈을 통해 크리스천의 여정과 결실을 보여주는 기독교 순례 여정기다.

표지

무려 1678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바이블 내용에 따라 구원에 이르는 여정을 잘 보여줘 이후 큰 사랑을 받았으며, 한국에도 1895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때 조선 화가인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에게 삽화를 맡겨 새로 그린 42점을 번역판 ‘텬로력뎡’에 실었는데, 그는 이 새로운 삽화를 자신이 기존에 그려오던 ‘기산풍속도(箕山風俗圖)’와 같은 모습으로 그렸다. 기존 삽화의 구도를 참고해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으면서도 조선의 분위기로 새롭게 그린 이 그림들은 모두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 그것을 이번에 이 책에 그대로 수록했다. 또한, 기존 삽화 및 기산풍속도와 비교한 해설도 수록해 삽화에 관해 좀 더 알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런 배려가 맘에 들었다.

삽화 비교

천로역정 이야기 자체는 소설로 보기에는 다소 어색한 점들도 많다. 이는 천로역정이 현실이 아닌 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꿈을 꾸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때론 두서없거나 말도 안 돼 보이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천로역정이 서사보다는 비유로 쓰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소는 물론, 사건들까지 모두 바이블에 나오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이해할 때에도 이야기의 흐름 뿐 아니라 거기에 나오는 상징과 비유를 살펴봐야 한다. 인물이나 장소의 이름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름이 처음 나올 때 영어 표현을 같이 써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번역은 조금 아쉽다. 특히 이름이 그러한데, 해당 의미를 담으면서도 좀 더 이름처럼 번역할 수는 없었나 싶었다. 일부는 헷갈렸는지 다른 이름을 혼용해서 쓴 것도 눈에 띄었다. 기왕 새로 내는데, 번역도 기존걸 참고하기보다 새로운 개정판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책은 꽤 신경 써서 잘 만들었다. 조선시대 삽화에 잘 어우러지도록 내지도 그렇게 디자인했고, 표지도 한지 느낌으로 만들어 옛날 책 같은 느낌을 잘 살렸다. 그래서 천로역정을 새로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한지 느낌의 겉표지

옛책 느낌 물씬나는 내지 디자인

무엇보다 삽화가 좋다. 조선풍의 삽화는 따로 떼어놓고 봐도 될 정도로 훌륭해서 이것만으로도 새 에디션으로서의 값어치는 톡톡히 하지 않나 싶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