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The Rehearsal)’은 선생과 학생의 섹스 스캔들을 소재로 한 엘리너 케턴의 장편 소설이다.

소설의 주요 요소에 대해 얘기하므로,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표지

선생과 학생의 관계, 더 나아가 섹스 스캔들은 언제나 관심을 끄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간 많이 써서 식상한 소재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소설엔 ‘독창적’이라는 수사가 붙는다. 왜 그럴까.

이 점은 처음 몇 장을 넘기면 슬슬 느끼게 되고, 중반을 넘어가면 놀랍게 느끼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단순한 섹스 스캔들 이야기로 쓰지 않았다. 오히려 이 주요 소재는 곁다리에 불과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이다.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현실과 연극이라는 두 축이다. 이 둘은 서로 번갈아 나타나며 서로를 보완해 주기도 하면서, 또한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먼저, 월 구분과 요일 구분으로 나뉜 이 두 축은 각각이 서로 다른 인물과 시선을 가짐으로써 다른 쪽에서 미처 다룰 수 없었던 내용을 다루면서 서사를 채워준다. 게다가 각 구분이 모두 시간의 전후가 있는 단위인 걸 이용해서 순서대로 얘기하지 않고 중간에 다시 이전 시제의 이야기를 한다든가 하는 트릭도 사용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무난한 소설이 되었을 거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작중 사건을 연극으로 재현한다는 요소를 집어넣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연극과 섞어 버림으로써 작중 현실과 연극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단일 캐릭터를 갖는 인물들이 아니게 됐고, 소설 속 이야기는 소설 속 현실을 서사하는 것만이 아니게 됐으며,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생각, 행동은 실재와 허구, 즉 연극이 뒤섞여 뭐가 소설 속 실제를 서술한 것인지, 뭐가 소설 속 연극을 표현한 것인지 모호하게 됐다.

여기서 작가를 한 번 더 칭찬하고 싶은 건 이런 전개로 갔을 때 많은 작가들이 빠지는 유혹, 즉 소위 ‘열린 결말’이라고 포장하는 ‘나 몰라라’ 식으로는 끝내지 않았다는 거다. 최소한 무엇이 연극의 일부이고 무엇이 현실의 이야기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또, 두 이야기가 모두 ‘소설 속 현실’을 담고 있는 것임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여전히 연극 부분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라고 봐야 하며 그러므로 독자는 끝내 ‘진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빅토리아가 호기심에 가득 차 하는 대사는 또한 독자의 대사이기도 한 셈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작가가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데, 대신 어떤 방향성을 가진 것인지는 작품을 통해 드러낸다. “지금 이 시기는 나중에 올 모든 것에 대한 리허설”이라거나 “‘진짜’처럼 보이기만 하면 돼”라거나,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는 식의 문장이 그렇다.

결론적으로, 첫인상과는 달리 소재나 내용 자체만 보면 별 특별할 것은 없었으나, 그걸 흥미롭게 풀어냈으며 소설로서의 기교도 좋았다.

10대의 허세와 정신적 불안정성, 그리고 성적 호기심과 대인관계 등을 어떻게 담아냈는지 따위는 접어놔도 흥미와 재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