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 에미크(Val Emmich)’의 ‘리마인더스(The Reminders)’는 기억되고 싶은 소녀와 잊어버리고 싶은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매우 뛰어난 자전적 기억력(HSAM)’을 가진 소녀 ‘조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기억력이 좋다. 단순히 ‘좋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모른다. 특정일에 자기가 겪었던 일 뿐 아니라, 그 때 보았던 사람의 모습이나 나눴던 대화까지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잊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며, 그게 자신만 잊혀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래서 모두가 자신을 기억하게 할만할 일을 하려고 한다.

한편, 연인을 잃은 남자 ‘개빈’은 연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이 때로 고통스럽게 다가와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남긴 물건들을 태우기도 하고, 그와 함께 살던 곳에서 벗어나 친구네 집에 머무르기도 한다. 모두 과거로부터 멀어지기 위함이다.

이 소설은 기억에 대해 이렇게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각자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그려낸다.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두 사람은 어느새 누구보다도 친해지고 각자가 갖고있던 생각의 다른면에 대해서도 차츰 깨달아간다.

그 과정에서 음악이 주요하게 사용되는데, 생각과 세대에 차이가 많은 이 둘이 그렇게까지 서로 교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음악이란 어떤 경계를 뛰어넘어 같은 걸 느끼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서 이들이 만드는 노래가 더 궁금하기도 했다.

이야기도 꽤 괜찮아서 둘이 서로 고민하던것이 어떻게 꼬여있는지, 또 그걸 어떻게 조금씩 풀어가는지를 정말 잘 그려냈다. 그 중에는 조금 막상스러울법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도 나중에 다 밝혀지고 나서는 잔잔히 미소를 지을 수 있게 수습도 잘 했다. 때때로 등장하는 그림들도 적절했으며 때론 아이의 일기장 한켠 그림같아 재미있기도 했다.

이 책은 싱어송라이터에 배우이기도 한 저자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라는데, 처녀작 치고는 꽤나 이야기 구성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작가의 다른 경험들이 소설을 쓰는데도 영향을 준게 아닐까 싶다.

음악을 이야기의 소재로 사용한 것 뿐 아니라, 그 외적으로 재미있게 이용하기도 했다. 각 장의 제목이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라는 게 그 대표적인 예다. 그래서 팝송, 특히 비틀즈에 대해서 알고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하다.

번역은 전체적으로 괜찮긴 하나, 간혹 눈에 밟히는 것도 보인다. 번역없이 단순히 음역해논 것도 꽤 많고, 병기한 것 중에 원문과 뉘앙스가 묘하게 다른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쁘진 않았으나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