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에번스(Dylan Evans)’의 ‘유토피아 실험(The Utopia Experiment)’은 문명 붕괴후를 가정한 자급자족 생활에 대한 시험 경과와 그로부터 얻은 것들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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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그럴듯해 보이는 시나리오를 배경으로 시작한, 한정된 기간동안 하기로 한 이 실험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흥미를 끄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그게 정말로 가능할지,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며, 불가능하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지독하게 물리고 물려있는 사회 구조에서는 구성원들에게 때론 부속품같은 느낌마저 들게 하기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전의 좀 더 ‘자연스러운 삶’이 어쩌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품게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척면만을 볼 뿐, 왜 지금과 같은 사회가 만들어졌으며 이전의 형태는 사라졌는지를 잊어버리고 있다.

작가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기존에 쌓아뒀던 사회적 지위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희생해가며 행한 이 실험은 결론적으로 그것을 다시한번 상기하게 해준다.

이 무난한 결론은 어떻게보면 쉽게 예상할만한 것이기도 했는데, 그건 저자의 이 실험이 처음부터 어딘가 어긋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험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구성원들도 그렇다. 애초에 실험을 이끌어야 할 저자 자신부터가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지 않았나. 그렇다보니 (작가가 그런 것 위주로 회상하고 정리해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잘못되어가는 게 너무 많아 보였다.

그렇지만 않았다면, 이 실험은 어쩌면 성공적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이 실험은 애초부터 끝을 정해둔 단기간의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기간동안에는 충분히 지속 가능한 모임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랬다면 실험의 결과 역시 완전히 다르게 결론났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들 주변에는 수십년간 유지된 모임도 있지 않았던가. 이 실험 만으로 자급자족이나 좀 더 자연적인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험 그 자체도 그렇게까지 의의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게 망가져가던 저자가 현대사회의 도움을 받고, 무사히 사회에 복귀한 후에 예전을 복기하고 정리하면서 얻은 것들은 가치가 있었다. 불만족스러워보이는 현대 사회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실패한 실험을 통해 어떻게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과정에 어떤 개인적인 문제와 사회적 심리가 작용하는지 살펴본 것도 흥미로웠다.

비록 실험 과정을 서사적 연결한 것은 아니지만, 주요 사건들을 꼼꼼하게 풀어내는 한편 그것들을 적절히 배치해 흥미롭게 전개한 것도 좋았다. 이상한 사람, 황당한 얘기들이 많아서 논픽션인데도 비현실적이고, 사건과 관련된 여러 이론들도 함께 다루기에 자칫 뜬금없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나름 끝까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