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워터스(Sarah Waters)’의 ‘티핑 더 벨벳(Tipping the Velvet)’은 빅토리아 시대 바닷가 마을 굴 식당집 소녀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표지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 원작으로도 유명한 작가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소재나 이야기, 서술 등 여러면에서 상당한 문제작이다.

동성애자, 그 중에서도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담고있는 있는데다가, 매춘같은 것도 태연히 나오고, 포르노만큼 말초적이지는 않지만 성애 장면도 상당히 노골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표현도 굉장히 야하다. 특정 부위나 행위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행위는 근현대에 들어 성적인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자리잡혀버린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묘한 배덕감을 불러일으키는데다, 뱉어내는 방식도 도발적이다. 장면 역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을만큼 묘사가 좋아서 절로 이건 성인용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당시에 그들끼리 사용하던 은어를 되살려내 사용하는 등 언어적인 면도 꽤 매력적이다.1 전혀 다른 것을 일컬으면서도 꽤나 노골적인 묘사를 담고 있어서 생각할수록 절묘해 한번쯤 써보고 싶게 한다. 그들끼리만 사용하는 표현이라는 것이 은밀한 것의 공유라는 묘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흥미있어할만한 소재와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표현하여 꽤 높은 호기심 충족과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거기에 이야기도 꽤 볼만하다.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고 할 수 있는 소녀의 이야기는 딱히 자극적인 소재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물론, 때로는 소위 ‘급발진’이라 할만한 이상 행동을 보이며 상황을 크게 엇나가게 하고, 그것이 중간에 이야기가 좀 붕 뜨는듯한 느낌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중요한 캐릭터의 서사를 너무 생략해서 이야기가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린다던가 하는 등 문제점도 보이기는 한다. 세부적으로는 캐릭터나 이야기 전개 등의 완성도가 그렇게 높다고 보긴 어렵다는 말이다.2

그러나 그런 것들도 뒤로 가면서 어색하지 않게 수습을 하는데다가, 좀 뻔하고 오글거리는 면도 있으나 마무리 포장 역시 나쁘지않게 했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얼마나 공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도 했었던가 보다만, 로맨스라는 측면에서는 딱히 다를바가 없어 감정 흐름도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준수하게 잘 만들어진 소설이다.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자아를 찾고 성장을 이뤄내는 주인공의 모습도 나름 잘 담았다.

번역도 괜찮다.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감성이 부족한데다 동성애와 레즈비언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한국 사람이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내용을 이해하고 감정선을 충분히 따라갈 만하다.

다만, 몇몇 표현에서에서는 (개역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어색한 것들이 있다. 예를들면, 창백하다던가 잃어버린다던가 하는 것이 그렇다. 원문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라서 그렇게 한 것일수도 있고, 잘 쓰이지는 않아도 엄연히 그러한 뜻도 있어 그렇게 한 것일수도 있다만, 자연스럽지 않아서 읽을 때 좀 걸린다.3

제목을 단순히 독음으로 바꾼 것도 아쉽다. 꼭 노골적으로 ‘애무하기’라고 하지 않더라도, ‘벨벳 핥기’라던가 ‘벨벳 젖히기’처럼 충분히 은유적이면서도 행위가 연상되게 바꿀 수 있었을텐데 쉽게 번역을 포기해버린 것 같다.

이 리뷰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모두 실제 사용했던 것을 가져온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개중엔 창작한 것도 있을 것으로 보이고, 무엇보다도 현재는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빅토리아 시대 레즈비언물 외에서는 (오해할 수 있으니) 함부로 가져다 쓰면 안될 듯하다. 

  2.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덧붙인 저자의 말을 보면 본인이 훨씬 더 잘 알고있어 좀 머쓱하다. 

  3. ‘창백하다’에는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현재는 대부분 파릇할만큼 핏기가 없고 병약해 보이는 걸 표현하는데에만 사용한다. ‘잃어버린다’도 장면 등을 생각하면 ‘놓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