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한국어판 만화’라는것은 외국에서 만들어진 만화를 번역하고 그걸 덧입혀서, 한국 출판사가 한국에서의 출판 라이센스를 득한 후 정식으로 발행한 만화를 뜻한다.

‘정식으로 발행’했다는것은, 한국의 심의 기준을 통과했다는 얘기고, 그 말은 심의에 어긋나는 내용이나 대사들은 모두 조정되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예전에 나왔던 정식 한국어판 만화들은 소위 ‘가위질’이 심하게 된것들이 많았다.

예를들면, ‘골반’과 ‘가슴’, ‘칼’ 그리고 ‘피’ 같은 것들이 있다. ‘일본 만화’에는, 장르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의 문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런 것들이 굉장히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내용과 별 관계 없는데도 그런 장면이 등장하기도 할 정도다.

문제는 ‘그런 일본 만화’를 한국에서 많이 수입하고 있다는 것인데, 출판사에서 내놓는 신간을 보면 거의 항상 50% 이상이 일본 만화다. 때로는 일본 만화만 발간하는 날도 있다. 이 만화들(거의 대부분의 만화들)이 심의를 거쳐 수정되서 나온다는 말이다. 물론, 정도에 지나치게 수정해서 말이다. 때로는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조차 없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추리 만화나 요괴물이 특히 심한데, 수시로 사람이 죽어나가고 칼 같은 무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정판에서 범인은 도망가다 잡힐라 치면 맨 주먹을 들어보이며 주인공들을 위협하며, 피해자는 항상 배려심 깊은 범인에의해 깨끗하게 닦여 어떻게 죽은건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피가 표현되었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화이트가 칠해진 '진월담 월의, 정식 한국어판' 1권, 60쪽의 한 장면

더 심한것은 아예 창작을 해놓은 것이다. 베르세르크가 그 한 예다. 아, 왜, 만화의 주인공 ‘가츠’가 어린시절 안좋은 일을 당하는 장면이 있잖은가.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등짝’ 사건 말이다. 하아.. 뭐냐고, 그게.1

내용을 바꿔치기한 '베르세르크, 한국어판' 4권, 11쪽의 한 장면

이건 번역하는 과정에서 너무 생략했다거나, 너무 의역해서 풀어놨다거나 해서 작품의 맛이 달라지는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훨씬 안좋다. 완전 악질아닌가.

결론적으로는 과감한(?) 수정에 불만이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심의가 느슨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인것이 아니라, 심의가 역할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불만인 것이다.

심의에 걸리는 내용이 나오는 것들은 대부분 내용이 그러한 것(사람을 죽이거나 성적 관계를 맺는 것 등)인데, 고작 그 장면이나 대사만 가위질 한다고 그게 마냥 좋아지나? 내용에 녹아들어있는 살인이나 폭력은 괜찮냐는 말이다. 뻔히 뭐 하는지 다 알고 뭔지 머릿속에 들어오는데, ‘쩌억’같은 효과음으로 그림만 가리면 다냐고. 이건 뭐 평원에서 사냥꾼 본 꿩이 고개만 처박고 있는꼴 아닌가.

제대로 된 심의라면, 가위질이 아니라 등급을 매겨야한다. 왜, 영화에서도 ‘몇세 이상 관람가’라는게 있지 않나. 만화쪽에서는 왜 ‘19세 이상’만 가능하다는 ‘빨간 딱지’만 있고 녹색이나 노란 딱지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중요한것은 ‘내용의 심의’ 아닌가. 만약, ‘누구도 봐서는 안되는 것’이라면 심의 거부를 하면 될 것이고, 아니라면 볼 대상을 제한할 일이다. 까놓고 말해, 가위질한다고 그 가위질하려는 장면과 내용이 사라지는것도 아닌데 굳이 가위질에만 목을 매는 이유를 모르겠다.

오히려 가위질은 작품의 대상이 아닌 어린이들까지 그런 내용을 보게 만들면서, 반대로 작품의 대상인 성인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작품밖에 감상하지 못하게 만드는 졸라 거지같은 방식인거다.

이건 심의 기관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출판사만의 문제도 아니다. 심의 기관이 제대로된 심의를 통해 등급을 정하지 않고, 출판사도 제대로된 등급으로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가위질이 일어나는것 아닌가.

휴..

됐고, 팔고싶다면 사고싶은 책을 만들어라. 그거 하나면 된다.

  1. 원본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자폭] 등짝을 보자!‘를 참고하시라. 덧붙여, (이 글에서 말하는) 번역가의 지인에 의하면, 번역은 제대로 했건만 책이 나오고보니 그 모양이었더라고 한다. 안습, 지못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