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베고도(François Bégaudeau)’가 쓰고 ‘세실 기야르(Cécile Guillard)’가 그린 ‘나의 미녀 인생(Une vie de Moche)’은 한 못난이가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이다.

표지

이 만화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페미니즘이나 사회비판적인 성격으로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이 겪는 일이나 성장 과정에서 거쳐가는 것들이 그런 점들을 꽤 여럿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굳이 시류에 휩쓸려 그런 쪽으로 부쳐 이 만화를 보거나 해석하는 대신 주인공 개인의 자존감 문제와 자아찾기 쪽에 집중했다.

책 속 주인공이 겪는, 불연듯 찾아오는 소위 ‘깨달음의 시간’은 사람이라면 성장하면서 으레 겪게되기 마련이다. 때로는 이를 비껴갈만큼 부유하고 잘생겼으며 매력까지 갖춘 사람도 찾아보면 물론 있기는 하겠다만, 대부분은 어떤 면에서든 부족함이 있고 그 때문에 충격 내지는 좌절을 겪는 때가 오기 때문이다.

외모비교는 그 가장 흔한 사건 중 하나다. 나와 친했던 사람에게서는 들을 수 없었던 비판적인(때론 이를 넘어서 비난뿐인) 이야기들은 충분히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줄 만하고 이는 자신의 위치를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게는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의 위치에 적응해 가기 마련이다. 일종의 사회화가 된달까. 그러나 그런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주인공은 이를 굉장히 크게 받아들이며 이후 수십년의 인생을 이것 때문에 방황하게 된다.

그녀는 ‘못난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그 어느것도 그녀에게 진정한 안식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심지어 인생을 바꿔준다고도 하는 성형수술 역시 마찬가지다.

성형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그녀가 단지 외적인 우월감이나 그를 통한 사회적 이득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시작은 외형을 두고 한 비난인 ‘못난이’에서부터 였지만, 그녀의 방황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끝내는 것도 외모를 바꾸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고 찾아해맸던 것은 자아의 정립과 스스로에 대한 만족, 존중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더더욱 성형처럼 외부적으로 자신을 바꾸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리라.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부응한다던가, 이미 있던 것을 따라가거나, 남들이 제안하는 역할을 떠맡는 대신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해석한 인물상을 선보이는 것으로 이전에는 없던 자신과 행복을 찾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워낙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보니 한 인간의 것 치고는 꽤 스펙타클하다. 이것은 그녀가 얼마나 많은 방황을 하면서, 자신을 다양한 장소과 경험을 통해 찾으려 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만, 아쉽게도 거기에 담긴 문화나 사건 등이 그리 익숙한 것은 아니어서 잘 이입이 되지는 않는다.

만화라기보다는 삽화를 그린듯한 그림 스타일은 분위기도 좋고 이야기와도 꽤 잘 어울린다만, 인물이 일관되게 보이지 않는 장면도 좀 눈에 띈다. 주인공 또한 그렇게까지 꺼려할 만큼 못난이처럼 그리지 않았는데, 이게 과연 그녀가 그렇게까지 격하당하고 오랜 방황을 할만 했냐는 것을 의문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후반부에 그녀에 대해 보이는 반응을 보면 더 그렇다.1

연출 면에서도 세세하게 다루지 않고 넘어가는 장면들이 의외로 많다. 그게 일관된 속도감으로 읽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하나, 글과 달리 묘사의 부족함을 느끼게도 하기에 좀 불친절하게 보인다.

책으로도 물론 괜찮긴 하다만, 다큐같은 영상물이었다면 더 괜찮았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리뷰는 이북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
  1. 늙어가는 것이 미인과 못난이의 격차를 줄여주며 못난이에게 유리하다는 얘기를 하긴 한다만, 그렇다고 해도 좀 극적으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