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계곡’은 어려서부터 주변을 살피며 어른스럽게 살아왔던 한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표지

번역일을 하는 은숙은 열일곱살 딸아이의 엄마다. 그 하나뿐인 딸이 어느날 임신 사실을 고하며 아이를 낳겠다고 한다. 고작 열일곱살짜리 딸이 말이다. 누가 이걸 손쉽게 허락해줄 수 있을까. 당연히 낙태를 생각한다. 이는 딸이 아직 아이를 낳기엔, 또 엄마가 되기엔 어리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급하게 ‘달의 계곡’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은숙은 두고온 ‘그’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편지를 쓰면서 어렸을 때의 일을 떠올린다.

은숙은 도망간 엄마와 돌아가신 아빠 때문에 결국 고모네 집에서 살게 된 고아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아이답지 않게 조심하며 살아온다. 그래서 은숙의 어린 시절은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고모네의 이야기, 그리고 고모네가 세주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심지어 자기 얘기를 할 때도 오로지 자기 얘기만 있는 경우가 없다. 마치 조연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다. 본문에는 그렇게 살아온 삶을 묵묵히 담고있다.

그런 그녀의 삶이 딸 아이의 반항같은 임신, 그리고 그걸 한사코 반대하는 마음과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솔직히 이 점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본문 챕터와 프롤로그 & 에필로그가 좀 따로 노는 느낌도 든다. 은숙의 어린 시절이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은숙의 딸 이야기도 둘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리 잘 공감되지 않는다. 과연 이 소설을 보고 자연스럽게 낙태와 태아의 생명권, 생명의 바다였던 말라버린 달의 계곡을 연상할 수 있을까 싶다.

이야기는 나쁘지 않았지만, 주제 전달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