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벡퍼드(William Thomas Beckford)’의 ‘바텍(Vathek)’은 인간의 탐욕과 그 끝을 그린 고딕 판타지 소설이다.

표지

중세 고딕 양식으로부터 유래된 고딕 소설은 ‘공포스런 분위기를 자아내어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인간의 이상 심리를 다룬 소설’을 일컫는다. 이야기의 특성상 공포물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고딕 호러라고도 한다.

장르문학으로서 ‘판타지’를 그린 작품인 경우에는 ‘고딕 판타지’라고도 하는데, 특성상 어두운 분위기와 이야기가 많기에 ‘다크 판타지’라고 하기도 한다.

바텍이 바로 그런 고딕 판타지에 속한다. 특이한 점이라면 장르 이름의 유례가 그렇듯 대게 중세 유럽적인 물건이 많은데, 이 소설은 동양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라만 낯선 것에 더 신비한 매력을 느끼는 법이기 때문이다. 동양 사람이 서양 판타지에 매력을 느끼듯, 서양 사람도 동양 판타지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한때 동양풍의 이야기를 유행처럼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이 소설도 그런식으로 쓰여진 것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런데도 불구하고 꽤나 완성도가 높다는 거다. 소설에서 차용하는 아랍의 문화나 신화 등이 꽤나 깊이가 있어서, 저자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본다면 충분히 유럽인의 순수 창작물이 아닌 동양의 신화를 정리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엄밀히 말해 이는 정확한(사실적인) 감상은 아니다. ‘동양’이라고 퉁쳐서 이야기하긴 한다만 정확하게는 ‘아라비아’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라 딱히 유럽인들보다 더 익숙할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여러 신화와 문화들 중 무엇이 진짜 아라비아의 오랜 것이고 무엇이 저자가 만들어낸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는 그정도로 저자가 아라비아 판타지를 잘 그려냈기 때문만 아니라, 아라비아가 한국사람에게 그만큼 낯선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은 생각보다 그리 쉽게 읽히진 않는다. 거기엔 낯선 내용 뿐 아니라 문장 기호나 문단 나눔 등에 인색한 형태의 글도 한몫한다.

종이를 아끼기 위해서인 듯 다닥다닥 붙여놓은 형태는 은근히 옛날 신화인 성경이나 경전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이야기도 신화적인 것들이라 묘하게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의외로 간략하게 요약이 되는데, 그걸 여러가지 사건으로 늘여놓음으로써 점차 되돌릴 수 없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점은 조금 ‘크툴루 신화’와도 비슷해 보인다. 중간에는 아직 희망이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게 이들의 결말을 더욱 강조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