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야 다오스타(Via d’Aosta)는 십자군을 소재로 한 정선엽의 장편 소설이다.

표지

책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주의 바란다.

소설은 십자군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얽혀있는 십자군 전쟁, 그중에서도 특히 비야 다오스타의 아버지와 그 가족, 그리고 그들과 같이 배척당한 결혼한 신부들의 이야기로 말이다.

이는 실패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배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또한 욕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비야의 아버지 사피에르의 이야기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후에는 잠시 장면을 바꿔 비야가 수도원에서 수련하는 이야기, 그리고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는 이야기들이 나오며, 십자군 원정길에 있는 세 나라 아르메니아, 로마제국, 룸 셀주크 왕국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등장인물이 나오며 이야기를 크게 부풀려 나간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십자군 전쟁이라는 구렁텅이에서 만나게 된다.

책을 다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왜 제목이 ‘비야 다오스타’인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초반에 제목이 어떤 뜻을 담은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이름이란 걸 알았을 때는 성장한 비야의 활약상을 그린, 조금은 영웅물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던 거다.

물론 주요 인물인 사피에르 신부의 아들이기도 하고, 그의 성장 일면을 다루며, 성전기사단으로서 십자군에 참여하기도 하니 분명 이야기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이기는 하다. 그러나, 단지 거기까지였을 뿐 딱히 그가 활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양쪽에 발을 담근 인물로서 철학적인 고민이나 주제의식을 드러내 주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비야의 인상은 오히려 조연인 포네로스나 한스보다도 약했다.

이 점은 결말까지도 그러해서, ‘비야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하는 나래이션마저 들릴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 책은 ‘비야 다오스타: 비긴즈’와 같다. 그래서 뒤가 더 궁금하고, 또 상상해보게 된다.

하지만, 책 소개를 보면 그런 연작 소설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닌 것 같다. 3부작으로 계획된 영화가 1편만 나오고 없어져 버린 것 같은 찝찝함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이야기도 그렇게까지 깔끔하진 않다. 몇몇 부분이 크게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결말부가 좀 심해서 한스의 선택이나, 전쟁통에서는 절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비야의 일이 그 전까지 쌓였던 몰입감을 좀 흐트러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마치 연재 종료를 통보받은 만화가가 어떻게든 예정했던 결말을 내기 위해 이야기를 바쁘게 건너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무엇보다 비야의 심경 변화를 충분히 그리지 않은 것이 아쉽다. 얼마나 생략했는지, 결말부에서 비야의 갑작스런 심경을 들었을 때는 얘가 지금 뭐라는 건가 충격일 정도였다. 물론, 비야의 변화를 ‘상상’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의 출신, 한스와의 경험, 친구와의 논쟁과 사건 등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꼬리표만 붙인다면 제아무리 극적인 변화라 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할 법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고뇌하는 과정을 묘사하지 않고, 갑자기 전쟁에 의문을 갖는 모습을 그리기 때문에 뜬금없고 황당하기까지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맹목적인 십자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원고지 분량으로 2,400매에 달하는 분량이라고 하는데, 기왕 쓴 거 좀 늘어나더라도 이런 부분을 더 확실히 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쉽다. 긴 분량 대부분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나는 이 소설을 가제본으로 봤다. 그래서 작가 후기는 보지 못했는데(가제본에는 실려있지 않다), 작가는 과연 이 소설에 어떤 후기를 남겼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