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The Picture of Dorian Gray)’은 미와 쾌락을 탐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표지

도리언 그레이는 마치 요정이나 미의 화신같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화가는 그에게 매료되었고, 그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 매력을 고스란히 담은 초상화를 완성한다. 모델이었던 도리언 그레이조차 질투할 정도로 아름다운 초상화. 그래서였을까. 그는 변해갈 자신의 모습에 벌써부터 절망하며 자기 대신 초상화가 늙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것은 푸념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그는 곧 자신의 기도가 현실이 되었음을 알아챈다.

이제는 이미 익숙한 고전인 이 소설은 안에 동성애 코드나 불륜, 마약 같은 말초적인 흥미요소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퇴폐성을 옹호하는 자기만의 기묘한 철학을 펼치기도 하는 등 가벼운 이야기와 쓸데없이 진중한척 하는 이야기를 번갈아가며 도리언 그레이의 타락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몰락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도 언급하니, 주의 바란다.

도리언 그레이는 냉혹하면서도 자기애만은 강하고, 내적갈등에 부닥쳤을때는 자기합리화를 시전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잘못마저 남탓으로 떠넘기는 쓰레기다. 그렇기에 그의 미모가 얼마나 아름답든 썩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의 주변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그레이를 부추기며 타락으로 몰아가는 헨리 경은 물론1, 그의 악운에 치여 아무런 정의도 실천하지 못하고 허무히 쓰러져가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헨리 경의 지나치게 확고한 개똥철학은 언뜻 중2병스럽기도 해서 묘한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도 읽는 내내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번역 때문인지 계속 입에서 또 머리에서 씹히는 길고 의미불분명한 문장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 읽고 책을 덮고나면 묘하게 다시 곱씹어보게 만드는 주제의식을 느낄 수가 있다. 어쩌면 그게 이 작품을 지금까지 사랑받게 만든 힘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번에 VISUAL CLASSIC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은 기존의 소설에 새로운 표지와 삽화를 덧붙인 것이다. 전문 만화가의 손으로 재탄생한 그림들은 나름 매력적이다. 다만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인물상과는 좀 달랐기에 조금 이질감이 일기도 했고, 삽화의 수도 생각보다 적어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삽화가 작품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바꿔, 이미 유명한 고전인데도 새로운 느낌으로 읽을 수 있는 건 꽤 좋았다. 그저 우려먹기만 하는 것 보다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꽤 긍정적이다. 다음엔 또 어떤 고전을 새롭게 갱신할지 기대된다.

  1. 마치 작가 자신의 철학을 담은 것 같은 모습을 보면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헨리경의 행태는 마치 인간을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와도 같다. 그게 얼마나 적절한지 보는 내내 그가 실은 그의 초상화 소원을 들어준 악마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