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이야기 발굴은 정말 필요하다

언젠가, 한국 고대사에 대해서 썰을 풀 사람은 없나’하고 푸념했던 적이 있다. 반만년이나 된 역사를 갖고있는 덕에, 한국에도 많은 신화와 전설, 요물들이 있는데, 아무도 발굴하지 않는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이런건 원래 입을 타고 전해지는거라 일부러 캐내지 않으면 그만큼 그냥 잊혀져버려서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참조와 리메이크로 생명을 이어나가는 일본 요괴들은 참 복 터졌달까, 부럽달까.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 13권 표지

아무튼, 그래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찾고 소개해주는 만화가 있었으면 했는데, 경성기담이 오랫만에 그런 역할을 조금 해주었다. 워낙 짧아서 그리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말이다.

감상

설정이 좋다

이 만화가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대중성을 잃지 않았다는거다. 한국은 전통 문화가 실생활에서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안타까운 현실 상 신이나 무당, 또는 요물들이 등장하면 너무 매니악하거나 구식같아 보일때가 많다.

무당의 이야기를 다룬 ‘도깨비 신부’가 그 한 예다. 현대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무당의 이야기를 꽤 진지하게 끌어나가는데다, 액션은 그닥 찾아보기 힘든 순정 만화인지라.. 이런거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재미없다 할 법 하거든. 대중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도깨비 신부 6권 표지

그런 점에서 이 만화가 1904년 대한 제국을 배경으로 한건 꽤 좋았다.1 배경이 과거면 좋은게, 한복이나 무당, 또는 토속신을 심각하게 믿는 사람들이 나와도 별로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는 워낙에 개신교가 판을쳐서.. 토속신앙인이 나오면 오히려 좀 어색하지;

주인공이 양인인것도 좋았다. 조금은 푼수같은 주인공 덕분에 만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아졌으며, 양인이 주인공인 덕에 과거가 배경임에도 현대적인 느낌이 들게도 하거든.

한국은 예를 중시했기 때문에 재밌는 주인공 보다는 강직하고 과묵하며 충성스런 주인공이 만들어지기 쉽다. ‘비천무’나 ‘불의검’ 같은게 그 한 예다. 사극이나 무협만화는 대부분 이런 주인공이 나오지. 그래서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무겁고 딱딱하며, 개그는 찾아보기 어렵다.

장수하고있는 무협만화 ‘열혈강호’가 신선했던것도 그런 전통적인 주인공을 안썼기 때문인데, 이 만화에서는 양인을 주인공으로 함으로써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만화가 되었다.

너무 짧아서 아쉽다

경성기담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연결되기도 하지만, 각각을 별개의 이야기라고 해도 된다. 이건 이런 류의 만화가 가진 특색이기도 하다.

총 2권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을 수록했다.

Mr.웨인의 1904 경성기담 1권 표지 Mr.웨인의 1904 경성기담 2권 표지

기담 각각은 가볍게 읽을만한 정도의 분량이다. 너무 긴것도, 그렇다고 너무 짧은것도 없다. 하지만, 2권으로 완결지었기 때문에 수록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주인공 웨인의 사정이 너무 후닥닥 해결되버리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제 겨우 대한제국에 자리를 잡아서, 본격적으로 ‘자기 탐구’와 ‘해결사’일을 할거 같더니만, 갑자기 비밀이 밝혀지고는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캐릭터들이 아깝지도 않나;

얼마나 빨랐는지, 작가의 말에서 ‘웨인의 이야기는 끝’이란걸 보고는 순간 ‘웨인말고 다른애가 주인공인 시리즈도 나오는거야?’라고까지 생각해 버렸다니까;

이런 기분이 드는건, 순전히 이야기가 적은 탓이다. 여기에 등장한 한국 요괴도 고작 6가지(검은 고양이, 구렁이, 도깨비, 혼쥐, 구미호, 토우) 뿐이다.2 입질 좀 올라그러는판에 낙시대를 거둬버린 느낌이랄까.

한 5~10권 정도였다면 그래도 나름 만족스러웠을텐데.. 쩝. 한편으로는 길게 끌지않고 짧게 끊었기 때문에 괜찮게 끝났다고 할수도 있지만, 역시나 아쉬움이 크다.

또 이런거 하나 나오면 좋겠다.

  1. 작가에 따르면, 실제 배경은 1905년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1904년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그냥 저렇게 한 것이라고. 

  2. ‘신’도 하나 등장하긴 한다만, 워낙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에 나왔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