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하자’는 생활을 위해 음악을 포기했으나 사회생활마저 실패해버린 40대 중년 중고 음악가들이 모여 만드는 밴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이광재 - 수요일에 하자

책 내용을 일부 담고 있으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주의 바란다.

처음 볼 때는 아직 꿈꾸는 중인 청년들의 이야기인가 싶었다. 취업에 실패하고 낙담하다 이럴 바엔 다시… 하며 꿈에 재도전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그것보다 더 늙고 힘이 부치는 중년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외형에 대해서 상세한 묘사가 있지는 않으나, 문득 배 나오고 머리 벗어진, 그럼에도 제대로 먹질 못해 마른, 묘한 체형의 아저씨들이 기타와 드럼을 휘두르는 모습도 그려진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는 그들이 청년을 지난 중년이기에 더 처절하다. 사회에서 실패하고 모인 그들이 굳이 다시 잡은 음악이건만 그마저 시원찮기 때문이다. 그동안 손을 놓아왔던 탓이다.

그러니, 그들의 실패는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역시 안돼’라며 포기하지 않고 부족한 게 뭔지 직시하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소름 돋는 한 성공을 이룬다. 비록 현실은 여전히 별 달라진 게 없긴 하지만 말이다.

겉으로는 중년 아저씨 아줌마들의 분투기인 이 책은 꿈과 행복에 대해 말하고 그것을 좇을 수 없는, 심지어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이상한 현실에 대해서도 토로한다. 거기에는 피해자가 피해자를 만드는 경제 구조, 무관심과 자해, 돌아올 수 없는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회에 대한 불만 같은 것들도 들어있다.

그러나 작은 그들의 분노와 외침은 마치 그들 자신의 작음처럼 큰 소리 없이 허공에 흩어진다. 그것은 그들에게 닥친 일도 마찬가지여서, 화나고 답답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건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주된 내용은 아니나 이런 모습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졌는데, 그들이 음악을 하는 게 꿈을 좇는 것이고, 또 그 음악이 다소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것과 대비된다. 그래서 더 어둡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누구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삶은 찌들려도 그들은 앞으로도 수요일이면 낙원에 모여 음악을 할 것이다. 마치 무지개를 좇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 자체가 엄청나게 매력적이거나, 대중 소설처럼 엄청 흥미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깊고 어둡게 사회를 고발하는 그런 종류도 아니었으나 나 자신의 꿈과 일에 대해서 한번 되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나는 지금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