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는 미투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표지

현대에 페미니즘은 그야말로 ‘붐’이라 할 정도로 크게 일어났으며, 그 흐름에 맞춰 ‘미투’라는 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나도 당했다’며 SNS 등으로 고발하는 것을 일컷는 미투는 마치 유행처럼 번지면서 여러 부작용들을 낳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무고죄다. 실제로 법적인 고소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SNS나 언론에 특정인이 가해자라며 던져놓는 식으로만 미투라는게 진행되다보니, 애초에 미투가 왜 일어났는지를 잊고 마치 진짜 유행인 것처럼 ‘나도 해봤다’는 도전과제 채우듯이 묻지마 찍기 식 가짜 미투가 많이 생겨났던거다.

무고 미투는 한 인간을 파괴한다. 미투 시발 당시에 생기는 사회적 위치의 추락과 경제적 손실은 이후에도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조회수 장사가 되는 미투와 달리 무고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아 성범죄자란 각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훗날 무고함이 뚜렷하게 밝혀지더라도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예도 있었으니, 이는 실로 거짓부렁을통해 한 인간을 악의적으로 살해한 것이라 할 만하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어디까지 소급해야 하느냐하는 문제다. 현대 사회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개선될 수 있다고 보며, 그렇기에 법은 기본적으로 적절한 죄값을 치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사부재리의 원칙’이나 ‘공소시효’같은 것도 그런 차원에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미투들이 이런 원칙을 무시한다.

과연 그 사람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와 변함없는 재고의 여지없는 진성 성범죄자일까. 그것은 과연 마땅히 한 사람이 파멸당해 마땅할만한 것일까. 미투와 성범죄자, 무고죄는 늘 이분법적으로 선악이 극명하게 갈리는 문제일까.

이 소설은 뜻밖의 미투에 당한 한 평론가의 시점에서 이런 여러 문제들을 꽤 잘 그려낸다. 딱 한가지 시선만으로 선악을 나누어 단정하지 않고 미투와 관련된 여러 측면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은 긍정적이다. 그것들을 여러 당사자들을 통해 꽤 실감나게 잘 그렸기에 더 그렇다.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있으니 주의 바란다.

그러나, 이것들을 모두 주인공인 ‘김지성’에게 엮음으로써 일종의 반전미를 주려고 한 것은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 전까지의 것들을 모두 ‘맥거핀’으로 만들어 버렸기에, 그때까지 기껏 늘어놓았던 다양한 시각들이 좀 의미없게 되버리기 때문이다. 이 역시 똑같이 맥거핀화 되어버린달까. 보는 내내 그렇게만 되지 말라며 빌었었는데.

이것은 심지어 그 후에 이어지는 지성이나 ‘유경’ 등을 통한 내용들 역시 얄팍한 자기합리화처럼 비치게 해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볼만 한 것으로는 느껴지지 않게 만든다.

지성을 무려 50대로 설정한 것과는 달리 유치하고 쉽게 기분에 휩쓸리는 등 기껏해야 30대 중반 정도나 됐을법하게 그린 것은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을 해친다. 그 연장에서 벌이는 갑갑한 행동들도 그를 더욱 어리게 보이게 한다. 혹시 공상은 아닌지 의심할만큼 비현실적인 ‘채리’는 말할 것도 없다.

개별 이야기로서의 완결성도 좀 부족하다. 또 다른 반쪽 중 하나인 채리와의 이야기가 이 소설에서는 거의 제대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의문만 남기다 의문스런 엔딩을 맞게하는 채리의 이야기는, 이 소설이 짝을 이루는 (사실상 2권인) 다른 소설 ‘어느 날 몸 밖으로 나간 여자는’의 완전한 반쪽이자 앞권임을 분명히 드러낸다.

얼핏 개별 소설인 것처럼 나왔지만, 둘 중 하나만 보는 것은 없다. 아예 안보거나, 2권까지 이어서 보거나다.

이 리뷰는 북카페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고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