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는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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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했던 것을 다듬어 책으로 엮어낸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좀비 아포칼립스 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작스레 창궐한 소위 ‘좀비들’로 인해 세상이 망하고,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나, 점차 절망으로 치닫는 상황에 처하면서 인간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솔직히 전형적이라 할 만하다.

그렇다고 뻔하고 재미없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뻔한 설정과 전개인 것 치고는 꽤나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좀비물을 주로 만드는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좀비 전문가’라는 얘기를 들을만큼 이쪽 장르에는 나름 이름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몇차례 본격적인 좀비물을 내놓기도 했었던지라 나름 좀비물의 핵심과 재미를 위해 갖춰야 할 요소를 잘 알고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좀비 아포칼림스를 기준으로 그 직전과 이후 두가지 이야기로 나뉘어 있다. 그걸 일기라는 장치를 이용해 한데 엮어 놓았는데, 솔직히 양쪽 이야기에 꽤 격차가 있어서 그렇게 잘 섞이는 느낌은 아니다. 양쪽 이야기가 서로에게 밀접하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이는 이야기의 비중 역시 그렇다. 소설은 대부분 아포칼립스 직후 카페였던 체즈베를 기점으로 일기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말은 일기라고 하지만 막상 그 서술 방식은 전혀 일기의 그것이 아니라서 기록같다기 보다는 차라리 또 다른 소설처럼 읽힌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재미는 대부분 거기에서 나온다.

이는 지구 귀환을 다룬 K-기준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별로 재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지어 어쩔때는 체즈베 무리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화자로서만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Z.A. 용어 사전도 그렇다. 이것은 K-기준네들의 이야기가 있기에 말이 되는 것이고 그 자체로 꽤 흥미롭게 읽어볼만 하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체즈베 무리의 이야기를 보충하기 위한 역할 밖에는 하지 못한다.

긍정적으로 보면 소설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도 설정집같은 내용을 어색하지 않게 같이 잘 섞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자면 본 이야기(즉, 체즈베 무리 이야기)를 통해 그것들을 풀어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그것을 보충설명하기 위한 이야기를 우겨넣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름 재미있게 보았으면서도 하나로 완성된 소설이란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