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탈’은 허영만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종의 히어로물이다. 특징인 각시탈을 써 신분을 감추고,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 맨손으로 택견을 이용해 일본놈들을 때려잡는 모습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1~7화를 담은 복간판 각시탈

복각판 각시탈 표시

거북이북스에서 나온 각시탈은 그 원작만화 각시탈을 복간한 것으로, ‘한국만화걸작선’이란 이름으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한 명작 만화 복간 프로젝트의 산물 중 하나다.

복간판 각시탈에는 1976년 월간지 ‘우등생’에 연재했던 분량 중 1~7화를 담았는데, 원본이 남아있지 않아서 잡지 연재분을 스캔한 후 보정해서 썼다고 한다.1 그래서 그런지 군데 군데 상한게 보이는데, 보정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도 있었으련만 적당히 하다만것 같아서 내심 아쉽다.2

아쉬운점도 있지만, 여전히 재밌는 만화

허영만의 초기작이라 그런지 이야기 자체에도 허술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예를 들면, 배경 설명이 전혀 없다는점이 그렇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굳이 구차한 설명을 붙이지 않은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보면 불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작품 자체만으로는 등장인물들에대해 이해 할 수가 없어서, 각시탈이 일본놈들에 맞서 싸우는 이유가 뭐고, 그 싸움은 대체 무엇을 위한것인지 갸웃하게 된다. 배경을 모르는 사람 눈에는 자칫 테러리스트들의 이야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3

복각판 각시탈 中 p22~23

하지만, 전체적인 소감은 그냥 여전히 재밌다는게 놀랍다는거다. 이게 무려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니. 만화가 나름 활성화됐다 할 수 있는 최근에도 재밌는걸 찾기는 어렵단걸 생각하면, 지금도 통한다는건 정말 대단한거다. 재밌는 만화는 새월을 타지 않는다는걸 새삼 실감한다.

이야기의 구성 자체는 무협물에서 흔하다면 흔한 ‘각성’과 ‘복수’라고 볼 수 있지만 그걸 이끌어나가는 완성도가 높고, 만화로서는 주인공의 택견 동작이나 일본놈들과 벌이는 액션도 좋다.

무엇보다 소재면에서 탈이라는 ‘변신 도구’가 등장하고 오로지 그것만이 각시탈을 결정짓는 구분물로 나온게 재미있다. 이는 겉으로는 정체를 숨기고 또 그럼으로써 주인공의 상반된 모습 즉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만, 의미론적으로는 ‘누구나 각시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각시탈이 설사 죽더라도 그 의지가 끝나는것은 아니며, 누구든 의지를 갖고 탈을 쓰기만 한다면 새로운 각시탈이 될 수 있다고 한다는 말이다. 초인이 아니라면 평범한 인간 영웅에게 이는 중요한 요소다. 인간은 사소한 일로도 죽을 수 있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계승이 가능해야지만 인간의 약함을 극복하고 영웅으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다. 주인공 교체라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4

복각판 각시탈 中

복간은 고작 7화만으로 끝났는데, 이는 아쉽기도 하지만 (전부 복간할게 아니라면) 꽤 적절한 곳에서 끝낸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후엔 영웅의 다양한 활약상이 주된 이야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영웅 탄생만을 다뤘기 때문에 일관된, 어찌보면 완성된 이야기로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길이도 그리 길지 않아서 영화 한편 정도라, 조금 각색하여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1. 한심하지만, 한국의 원본 관리 능력은 정말 지옥과 같다. 엉망이라는 얘기지. 이게 옛날 말인것만은 아닌게, 최근 나온 전자만화책을 봐도 일본것은 대체로 깔끔하고 잘린것도 없는데 반해 한국것은 일부가 짤리는 등 온전치 않은것이 많은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진정, 한심한 노릇. 

  2. 구성도 불만인게, 1권짜리 책에 쓸데없이 북박스가 왠말이냐. 그런 쓸데없는걸 할려면 차라리 가격을 낮추던가, 종이를 바꾸던가, 판본이나 키워라. 

  3. 현실에서도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라 해쌌는데, 뭐.. 

  4. 영웅을 계승한다는것이 각시탈만의 요소는 아니다. 이것도 하나의 클리셰다. 대표적으로 ‘팬텀(The Phantom)’이 있지. 성공한 배트맨 리붓 시리즈의 끝인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에서도 계승 얘기가 나온다.